연재칼럼

코맹맹이 소리 [말글살이]

닭털주 2025. 11. 27. 22:25

코맹맹이 소리 [말글살이]

수정 2025-11-27 18:44 등록 2025-11-27 17:33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내가 의심스럽다. 외부 자극에 곧바로 튀어 오르는 내 감정이 의심스럽다.

목소리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목소리를 처음 듣고는 덮어놓고 믿음직스럽다거나 따뜻할 것이라 기대한다.

반대로 자신이 없어 보인다거나 신경질적일 것이라고 넘겨짚기도 한다.

친한 동료 한 사람은 목소리가 가냘프고 높아서

그가 아무리 심각한 얘기를 꺼내도 내 머릿속에선 귀엽군!’ 하는 딴청이 피어오른다.

 

높은 자리에 있는 남성들은 대개 굵고 낮은 목소리를 지녔다.

몸집 큰 짐승이 낮게 울부짖듯, 저음의 남성은 힘과 지도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반면 낮은 목소리의 여성은 고집 세고 답답하고 둔하고 지루할 것 같다고 폄하한다.

목소리를 둘러싼 이런 편견이 우리의 판단을 좌우한다.

 

그런 편견은 우리에게 목소리를 시시때때로 바꾸라고 눈치를 준다.

감정노동의 핵심은 목소리다.

당신도 친한 사람한테 내는 목소리와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했을 때의 목소리가 다를 것이다.

나도 편한 사람과 꿍얼거리다가도 전화가 오면 대번에 높고 경쾌한 톤으로 바뀐다.

음계로 치면 도레였다가 단숨에 솔라로 뛰어오른다.

전화를 끊으면 그대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내 목소리는 나를 닮아 가늘고 느리고 불안하다.

계절마다 찾아온 비염은 아예 내 목소리를 코맹맹이 소리로 만들었다.

세상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사람을 자신감이 없거나 구질구질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남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그렇게 생각할 거라 짐작하니, 있던 자신감도 더 쪼그라든다.

그저 코가 막혔을 뿐인데 사회성까지 의심받다니, 억울하다. 휴지에 코를 푼다.

막힌 코와 함께 꽉 막힌 편견도 시원하게 뚫렸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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