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뚱딴지 [말글살이]

닭털주 2025. 12. 16. 17:33

뚱딴지 [말글살이]

 

수정 2025-12-11 18:46 등록 2025-12-11 17:11

 

 

 

클립아트코리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뚱딴지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대화의 흐름을 끊고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면 듣는 핀잔이다.

매출 하락의 원인을 찾으라고 핏대를 올리는 팀장 앞에서 다들 쥐 죽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오늘 점심은 마라탕 어떠세요?”라고 눈치 없이 묻는 막내처럼 말이다.

 

뚱딴지란 말 자체가 뚱딴지같다.

본래 뚱딴지는 국화과 식물인 돼지감자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늦여름 피는 꽃은 노란 해바라기를 닮아 제법 예쁜데, 막상 땅을 파 보면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덩이줄기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꽃과 뿌리의 모양새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불쑥불쑥 자라는 성질 탓에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비유하게 됐다.

게다가 전봇대 위에서 전기가 땅으로 흐르지 않게 막는 하얀 사기 재질의 절연체도 뚱딴지라 부른다.

생김새가 영락없이 돼지감자다.

 

천방지축, 예측 불허. 현대의 말글살이에서 뚱딴지는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다.

빈틈없는 논리, 촘촘한 계획, 예측 가능성이 정답인 사회에서 맥락을 벗어난 발언은 쓸모없는 잡음이다.

우리는 대화가 기승전결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거북해하는 건,

숨 막히는 일상의 엄숙함이 실은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 한마디로 너무 쉽게 별거 아닌 것이 될까 봐 두려워서가 아닐까?

 

뒤집어 보면 엉뚱한 소리는 과열된 우리 삶의 전류를 잠시 차단해 주는 절연체다.

무거운 회의 시간에 터져 나온 뚱딴지같은 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허물고 헛웃음을 짓게 하는 것처럼,

팍팍한 삶을 구원하는 건 의외로 맥락 없는 헛소리일지 모른다.

뭘 그리 심각하게 사나. 나는 오늘도 뚱딴지같은 말이 없을까 골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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