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내다’ 그 말을 즐기는 자는… [말글살이]
수정 2024-02-22 18:43등록 2024-02-22 14:30
다리를 다치면 목발을 짚듯이, 말도 뜻이 불분명하면 필요 없는 말을 덧대어 뜻을 선명하게 만든다. 단어 ‘드나들다’를 보면 ‘들다’와 ‘나다’가 합쳐져 ‘드나(들나)’가 만들어졌지만, 뜻이 불분명하여 뒤에 ‘들다’를 한번 더 썼다(‘나들이’는 한번씩만 썼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에서 보듯이,
경계 밖으로 나가는 걸 ‘나다’, 안으로 들어오는 걸 ‘들다’라고 한다.
하지만 두 단어는 다른 뜻도 많아서 안이나 밖으로 움직인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려면 ‘나오다, 나가다, 들어오다, 들어가다’처럼 뒤에 ‘오다, 가다’를 붙여줘야 한다
(요즘엔 ‘안으로 들라!’보다 ‘들어와!’란 말을 더 흔하게 쓴다).
‘나다, 들다’의 사동형은 ‘내다, 들이다’이다.
마찬가지로 ‘내다’는 뭔가를 밖으로, ‘들이다’는 안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릇하게도 두 단어가 붙은 말은 움직임의 방향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머릿속에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끌어내다’와 ‘끌어들이다’만 봐도 그렇다. ‘끌어내다’는 팔다리를 번쩍 들든 야무지게 멱살을 그러잡든 완력이나 폭력을 행사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힘을 망설이지도 숨기지도 않고 쓸 듯하다.
반면에 ‘끌어들이다’는 설득과 회유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느낌이다. 달콤한 말과 그럴듯한 논리에 속아 넘어갈지언정 제 발로 왔으니 뒷소리하기도 계면쩍다.
‘끌어올리다’와 ‘끌어내리다’도 비슷하다.
사람은 위로 올라가는 걸 좋아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지 끌어내려질 때는 비참한 광경이 벌어진다.
어설픈 대구법을 쓰자면, ‘끌어들이는 걸 즐기는 자는 끌어올려질 것이고,
끌어내는 걸 즐기는 자는 끌어내려질 것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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