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요?
입력 : 2025.01.20 21:18 수정 : 2025.01.20. 21:21 심완선 SF평론가
최근 본 기묘한 표기는 “펑 퍼짐함”이었다. ‘펑’과 ‘퍼짐’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으므로 둘은 별개의 단어다.
대강 조합하면 ‘펑 소리가 나며 퍼지는 일’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맥락상 그럴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펑퍼짐한 정도’라는 의미로 쓰인 표현이었다. 현대사회, 특히 온라인 공간에 파도처럼 몰아치는 무수한 텍스트 대부분은 한글 맞춤법 규정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읽는 쪽에서도 맞춤법보다 맥락과 의도를 중시한다. 그러니 표기된 대로 읽으려 하면 오히려 말뜻을 놓친다. 다시 말해, 정확하게 읽으면 틀린다.
한글 맞춤법의 띄어쓰기는 꽤 어렵다.
가령 ‘할 수 있다’는 원칙적으로 띄어 써야 한다. ‘할 수 없이’도 띄어 쓴다.
다만 ‘할 수밖에 없다’는 중간을 붙여 쓴다.
이와 달리 ‘방 밖에 있다’는 띄어 써야 한다.
밖을 바깥이란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 밖에 있다’는 ‘집밖에 있다’로 붙여 쓸 수도 있다.
바깥이란 의미는 같더라도 ‘집밖’이 별도의 단어로 사전에 등재된 탓이다.
이렇듯 자주 맞물리는 단어들은 한 단어로 결합하곤 한다.
‘눈 먼’은 ‘눈먼’, ‘큰 돈’은 ‘큰돈’이 되는 식이다.
다행히 이들은 관용적으로도 의미가 흡사하기에
‘큰돈에 눈먼’이든 ‘큰 돈에 눈 먼’이든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띄어쓰기 하나로 뜻이 달라질 때는 길이 조금 험난하다.
나는 ‘-만하다’에 늘 주의를 기울인다.
“분위기가 산만하다”
“고래는 크기가 산만 하다”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모두 의미가 다르므로 용례도 다르다.
“밖은 햇살이 강해서 눈 부시다”는 실제로 눈이 부신 경우이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부시다”는 대상이 아름답거나 뛰어나서 빛난다는 관용적 표현이다.
한편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처럼 ‘전 세계’는 꼭 띄어 쓴다.
‘전세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세(三世) 중 현세 이전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골똘히 생각할수록 말문이 막히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 맞춤법 규정이 바뀌므로,
그때는 맞았던 표현도 지금은 틀릴 수 있다.
‘어름’과 ‘설겆이’는 한때 정확한 표기였고
‘짜장면’과 ‘남사스럽다’는 오랫동안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2014년 띄어쓰기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띄어쓰기는 붙여 쓰고 붙여 쓰기는 띄어 쓴다.
띄어 쓰는 것은 띄어 쓰지만, 띄어쓰기는 띄어 쓰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보니 틀린 표현이다.
‘붙여쓰기’도 사전등재어로 자리잡았으므로 이번 기회에 고쳐 쓰고자 한다.
“띄어쓰기는 붙여쓰기하고 붙여 쓰는 것은 띄어 쓴다.”
덧붙여 ‘고쳐쓰기’도 붙여 쓰는 말이고,
‘오래전’과 ‘자리잡다’도 관용적 의미라면 붙여쓰기한다.
정말이지 정확한 글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맞춤법을 준수하려는 몸부림은 구시대적인 장인정신 같기도 하다.
품이 많이 드는데 효용은 덜한, 보통은 불필요한 고생이다.
더군다나 맞춤법 지적은 대체로 꼬투리 잡기 아니면 기껏해야 오지랖이다.
언어 규정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고, 그렇다면 맞춤법보다는 발화자의 의도가 우선이다.
그래도 마찬가지 이유로 맞춤법이 중시되면 좋겠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규약이고,
우리는 복잡하고 섬세한 의미까지 전달하기 위해 문자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 끝에 글을 쓰는 내가 있다.
그리고 누구든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고 고심할 때가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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