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이 섬에서 일 년만 살자 [서울 말고]

닭털주 2025. 2. 25. 11:30

이 섬에서 일 년만 살자 [서울 말고]

수정 2025-02-23 18:56 등록 2025-02-23 16:04

 

 

먼 바다를 지키는 빨간 등대가 아름다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바닷가. 사진 백창화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대설주의보에 강풍 특보가 내려진 제주의 겨울은 춥고 을씨년스러운 데다 한없이 변덕스러웠다. 제주에서 눈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날려서 몰아치는 눈보라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인데 자동차로 5분만 달리면 금세 맑은 하늘이 나왔다. 눈인가 하면 비였고, 구름인가 하면 또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잠시 차에서 내려 길을 걸으면 사람이 떠밀려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 퍼부었고 이 바람에 두들겨 맞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비행기에선 수많은 사람이 내려 공항은 붐볐는데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건지 바다도 식당도 카페도 텅 비었다. 제주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마주치는 상가마다 휴업 또는 폐업과 임대를 써 붙였고 마주친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이런 상황이 비단 제주뿐만은 아니어서 내리막 경제와 함께 국민 마음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는 혹독한 겨울. 봄은 쉬이 우리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을 모양인 듯하다.

수심 가득한 와중에도 커피 향 가득한 실내에서, 휘청이며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옥빛 바다는 근심 없이 순진한 아이처럼 말갛고 투명하다. 바람이 이토록 부는데도 파도는 사납지 않고 검은 바위로 달려와 부딪치는 우유 빛깔 포말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 이 바다를 보러, 이 바다에 살러, 나는 왔지, 두려움은 다시 설렘으로 바뀐다.

 

바다를 처음 본 건 열두살 때였다. 할머니 손을 잡고 부산행 기차를 탔을 때는 어린 마음이 두근두근했겠다. 유명하다는 해운대를 가고 싶었으나 작은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송정 해변으로 해수욕을 갔다. 화려할 것 없는 소박한 동네 바다에 나는 약간 실망했고 처음 부딪쳐본 파도는 두려웠다. 그래도 한번 본 것의 힘은 위대해서 바다를 보지 못하고 책만 읽었을 때는 그려지지 않았던 모험과 상상이 나래를 펴고 어린 마음을 장악했다. 그때부터 바다는 내게 환상이 되었다.

 

귀촌을 결심했을 때 바닷가 마을은 일순위 후보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바다와 가장 거리가 먼 내륙 한복판 산속에 살게 되었다. 여전히 바다는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았고 숲 속의 책방 주인으로 살면서 내내 나는 바다 마을 다이어리를 쓰는 꿈을 꾸었다. 눈앞에 바로 바다가 펼쳐지는, 신발 신고 나가면 앞마당이 바다인, 그런 곳에 살고 싶었다. 해안가의 매운 현실을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코웃음을 치는 철없는 꿈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곳에서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었다.

관광으로 온 젊은 사원 하나가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고 있다’(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이생진 시인의 시처럼 바닷물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못내 가슴으로 담아두던 제주가 도시인들의 열풍에 내몰려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더니 이제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부동산 과열과 관광객 급감, 과도한 경쟁의 끝은 줄폐업으로 이어져 온통 한숨뿐인데 이 섬의 소식을 다룬 기사나 영상 아래는 혐오와 비난의 댓글이 넘쳐난다.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 앞에 서서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이곳에 열광했을 때 제주는 극심하게 황폐해졌는데 많은 이들이 떠나가고 난 지금 다시 푸르게 새 살이 돋아날지 모르겠다고. 질식하고 망가진 것들이 다시 숨을 쉬는 시간. 폭풍이 지나고 나면 이 바다에도 새봄이 오리라 믿어보며 아픈 제주에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맘이 되었다.

 

실은 더 이상 종이책의 미래는 없다고, 지역은 소멸하며 시골 책방은 쓸쓸히 사라질 거라고, 한탄의 말들로 하도 두들겨 맞아 제주보다 더 아프고 아픈 내 맘을 위로하자 떠나온 길.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바닷물을 펜에 찍어 내 오랜 꿈을 써 본다.

 

이 섬에서 일년만 살자, 일년만 뜬 눈으로 살자, 이 섬에서 일년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