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는 컬링처럼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수정 2025-02-26 19:27 등록 2025-02-26 19:17
이명석 | 문화비평가
“내가 단 걸 뭘 먹었다고?”
세금이 뭔가 해준다면 꼭 해보는 친구가 보건소에서 대사증후군 검진을 받고선 씩씩댔다.
지난번에 비해 수치가 안 좋아졌다고, 최근에 뭘 먹었냐고 물어보더란다.
“감기 기운이 있어 생강차와 과일차를 계속 마셨다니까, 그게 원인일 수 있다고 그러시네.”
담당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노골적인 잔소리 대신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며 에둘러 말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참지 못했다.
“너 황도도 캔째로 마시잖아.” 어색한 침묵 뒤의 역공.
“너도 검사받아 봐!”
그렇게 나는 이틀 동안 빵과 튀김을 끊은 뒤 보건소로 가게 되었다.
먼저 온 부부가 검진을 받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서로의 뱃살을 찌르며 상대를 쏘아붙이더니, 담당자가 조곤조곤 말하자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결의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다정히 손을 잡고 나갔다.
잔소리는 보통 수직선이다.
나는 가부장 정신 충만한 대가족 사회에서 사촌, 외사촌 중 제일 막내로 태어났다.
식구들은 대부분의 의사 표현을 잔소리의 형태로 했다.
심지어 칭찬조차. “그것 봐. 하면 잘하잖아.”
나는 자신의 어떤 문제도 발설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잔소리 듣지 않는 삶’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일찍부터 혼자 살기로 결심한 데는 그 이유도 컸다.
어른이 되면서 수평적이면서도 가까운 관계들을 만났는데,
수평선의 잔소리 역시 만만찮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부나 커플들이 서로를 꼬집는 건, 분명 애정과 관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의 상처를 받으면 ‘그러는 너는’이라며 반발하기 마련이다.
급기야 상대의 약점과 잘못을 찾으려 안테나를 세우고, 상호 폭로전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 누가 잘못했나 물어보자.”
누군가 둘의 말을 들어주면 잔소리는 삼각형이 된다.
하지만 심판관을 세워뒀다며 봇물 터뜨리듯 상대를 비방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왜 나한테 조용히 말 안 하고, 창피하게 동네방네 떠들어?”
건강 문제는 일반적인 잔소리와는 다를 수 있다. 검진 수치라는 기준이 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예전 살던 동네에 ‘잔소리 약국’이 있었는데, 이름처럼 약 대신 생활 습관의 변화로 해결하도록 조언해주곤 했다.
이렇게 약을 안 팔면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샘솟는 잔소리를 참고 나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보건소에서 몇가지 애매한 수치와 적당한 잔소리를 안고 나왔다.
이제는 어떻게 하지?
당장은 식단 조절과 운동을 결심하겠지만, 혼자서는 오래 못 갈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분명 잔소리가 필요한데 수직도 수평도 아닌 방법은 없을까?
나는 다각형을 택했고, 가까운 친구 몇명의 단체 대화방에 검진결과를 올렸다.
“혈당이 좋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빵은 줄여야겠지?”
수평의 잔소리 관계라면 “빵돌이가 빵을 끊어?”라며 쏘아붙일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친구들이 적당히 격려하고 충고하는 말로 중화시켜준다.
“사워도우 빵이 혈당 조절에 좋대.”
나는 느슨한 결심의 말도 던져본다.
“날 좀 풀리면 유산소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보려는데?”
그러면 누군가 ‘오다 주웠다’는 듯이 달리기 코스나 탁구 강좌 정보를 던져준다.
칭찬을 바라며 채소 위주의 식사 사진을 올리면, 한의학 공부를 하는 친구가 영양 요소를 검토해준다.
누군가는 이런 넋두리에 속이 터질지 모른다.
자기 건강도 관리 못 하면서 혼자 백살까지 살 거라고 떠들며 다니냐고?
인정한다. 싫은 소리는 듣기 싫고, 귀찮은 일은 하기 싫지만, 또 아픈 것엔 치를 떠는 나약한 에고다.
그래도 이런 혼자들이 다각형의 잔소리로 서로를 이끌며 살아야지 어쩌겠나?
나는 컬링을 좋아한다. 누군가 돌을 던질 때 빗자루를 들고 지켜보는 동료들이 있어 좋다.
“라인 좋아. 속도 괜찮아.”
칭찬을 하다가도, 변화가 필요하면 빗자루를 들고 달려든다.
큰 문제가 생기면 작전 타임을 부르고 모여든다.
나는 그들의 빗자루질이 잔소리 같다.
좋은 결과를 얻으면 외친다. “굿 스위핑!” 그다음엔 내가 빗자루를 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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