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백기완 선생님 1주기: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음을

닭털주 2022. 2. 15. 17:46

백기완 선생님 1주기: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음을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로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민족사진연구회 제공

 

[왜냐면] 김중배 | 뉴스타파함께재단 이사장·전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이름도 남김 없이한평생 나아가는 삶이 도리어 뜨거운 이름을 남기는가!

백기완 선생님, 그분을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감동이었습니다.

이름만이 아니라 사랑명예도 남김 없이 노나메기의 새날을 열어내고자 했던 싸움 선비인 그분의 이름은 더욱 떠올랐고 새끼에 새끼를 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하는 벗들을 무리 짓게 했습니다.

 

통일꾼’ ‘민주꾼’ ‘민중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 스스로 떠올렸던 장산곶매버선발그리고 노나메기도 다시 그분의 이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그 모든 이름들이 백기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나부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싸움판에서나 맨 앞장서 나부끼는 깃발이었습니다.

흔들림 없이 그제서야 저는 깃발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부끼는 것임을선생님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한 해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이제는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역시 그분을 생시로 만나보고 싶어, 몸부림칩니다.

님 가신 이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옛님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평생 동지였던 장준하 선생님의 무도한 죽임과 죽음을 통곡하며 밤마다 목메어 불렀다던 선생님의 노래에, 천갑절 만갑절의 비통함을 더해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도 백기완 선생님, 그분이 정작 돌아가셨음을 믿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시시각각 날마다 돌아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도 앞장선 깃발로 나부끼고 있지 않습니까? 더하여 누리 곳곳에서 장산곶매는 날아오르고자 하고, ‘버선발들은 뜀박질을 멈추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모두가 백기완의 새끼들, 아니 백기완의 벗들입니다. “백기완과 함께를 넘어 백기완과 한얼, 한 몸이 된 한 덩치의 백기완임을 끝내 믿고자 합니다.

돌아가셨다는 그분은 늘 돌아오시고 또 돌아오시는 것 같습니다.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음을!

어리석은 저 같은 무리에게 깨우쳐 주시고 또한 확증해 주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저는 오늘, 선생님의 안식과 영면만을 빌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선생님의 불길 같은 오늘의 삶을 증언하고 싶습니다. , 죽음 뒤에도 타오르는 삶이 있음을!

제국의 불야성을 몽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려라/ 그 한발떼기에 언 땅을 들어 올리고/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선생님이 절규했던 노나메기의 새날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그 새날이 올 때까지, 선생님은 아무리 빌어도 그저 주무시기를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만 같습니다. 진정으로 빌고자 한다면 선생님이 그렇게도 열어내고자 했던 새날을 우리 함께, 죽음 뒤에도 삶의 빛으로 영롱한 백기완과 함께 끝내 열어내야만 합니다. 그 새날에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 놓고 선생님의 안식과 영면을 빌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우리 죽음 뒤에도 생시처럼 체온을 나누며 만날 수 있기를, 선생님의 젊은 날처럼 소주 한잔 나눌 수 있기를 기약고자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흔해 빠진 듯하나, 그래도 가장 간절한 넋두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선생님!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