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83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된다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된다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지니와 신밧드는 여자애들이 자기들보다 힘도 세고 논리적으로 말도 잘하고 시끄럽고 극성맞다고 관자놀이에 힘줄을 세우며 의견을 피력했다. 이토록 격렬한 합평 시간은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그날 나는 여자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내내 만나고 졸업하고 회사에 가도 만나고 결혼해도 만나니 잘 지내보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마무리를 했다. 수정 2025-04-02 17:35등록 2025-04-01 16:52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어쩌다 소년글방을 하게 됐다. 글방을 시작한 이래 내가 운영하는 글방에는 늘 여자들이 많았는데 소년 4명만이 참여하는 글방을 열게 된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검바는 5학년이었는데 이미 150여종의 새..

책이야기 2025.04.02

좋아서 하는 마음

좋아서 하는 마음입력 : 2025.03.19 21:24 수정 : 2025.03.19. 21:31 성현아 문학평론가  봄의 기운을 담뿍 머금은 3월이 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문학을 가르치는 나는 어김없이 칠판에 의자 하나를 그린다.잘 그리지 못해서 가끔 변기같이 보이기도 하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의자’라고 부릅니다. ‘의자’라는 말과 실제 의자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학생들은 일제히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언어와 의미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해요. 혹은 그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뜻에서 언어의 우연성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겠지요.”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문학 이야기를 한다. “문학은 언어로 하는 예술..

책이야기 2025.03.27

여기 아닌 저기를 바라보는 힘

여기 아닌 저기를 바라보는 힘 [.txt]수정 2025-03-14 12:12등록 2025-03-14 12:00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 (16) 2025년은 그림책의 해입니다.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를 위한 그림책, 누구나 그림책을 읽고 누리는 문화를 위하여 ‘2025 그림책의 해 추진단’과 한겨레는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을 공동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책의 해 홈페이지’(bookyear.or.kr)를 참고해 주세요.  왼쪽 면에는 사람들이 보도블록 위에 누워 있고, 오른쪽 면에는 아이의 웃는 얼굴이 살짝 보인다. 바닥에 누운 사람들이 그 아이를 웃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수지’는 사고로 다리를 잃고, 베란다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만 바라..

책이야기 2025.03.15

시간과 역사 품은 도서관, 한국의 오늘을 묻다

시간과 역사 품은 도서관, 한국의 오늘을 묻다 [.txt] 국권 상실 현장과 자살한 권력자 집 공화당 당사, 항쟁과 학살 장소 등 정치·역사 연결고리 도서관 조명 이문영기자 수정 2025-03-14 09:33 등록 2025-03-14 05:00  김대중 대통령이 ‘사직동팀’ 폐지 방침을 발표한 2000년 10월1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사직동팀 건물(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문화관)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어린이들을 위해 설립(1979년)된 시립도서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른들이 오갔다. 책 읽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가면처럼 앞세운 그들은 도서관 건물 한 동을 차지한 채 무언가로 분주했다. 1983년 서울시가 도서관을 증축한다며 위장 예산을 편성해 2층 건물을 3층으로 올렸다..

책이야기 2025.03.14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할 거야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할 거야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수정 2025-03-09 21:47 등록 2025-03-09 18:48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너 있으나 나 없고 너 없어 나도 없던/ 시작되지 않은 허구한 이야기들/ 허구에 찬 불구의 그 많은 엔딩들은/ 어느 생에서야 다 완성되는 걸까”(정끝별, ‘끝없는 이야기’). 이 시를 쓸 때 나는, 어긋나 시작되지도 못했던,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가 되지 못했던, 허구한 허구의 이야기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영화 ‘더 폴(The Fall)’을 보면서 오늘이라는 매일매일이, 내가 너와 함께 써 내려 가는 환상적인 모험이자 위대한 이야기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좋은 이야기의 힘이 바로 나와 너를 구원해 주기도 ..

책이야기 2025.03.10

벌써 두 번째 벽돌 책 읽기 모임에 참석하며

벌써 두 번째 벽돌 책 읽기 모임에 참석하며25.03.06 13:55l최종 업데이트 25.03.06 13:55l 최승우(seung2871)  나른한 오후 서학 예술 마을 도서관을 찾은 사람의 모습이 여러 겹이다. 그림책을 보는 사람, 노트북 강의를 듣는 어른, 편안한 소파에 앉아 사색에 잠긴 아주머니, 휴대전화 삼매경인 젊은이 등 제각각 모습이다. '예술을 쓰다'라는 공간에는 두 개의 글감을 조합해 자기 생각과 바람을 전하는 방문객의 글이 모여 있다. "거친 밤의 시간, 거친 마음으로 잠 못 이룬 하루가 지나갔다. 거친 이 나라…. 푸른 들판에서 편히 쉬다 가고 싶은 국민의 마음을 누군가는 알까?"라며 정국 혼란과 불협화음의 시대에 대한 불안감과 안타까움을 전한다. "손님은 참 복도 많으시지. 두 통장이..

책이야기 2025.03.09

AI가 도달할 문학적 글쓰기 [크리틱]

AI가 도달할 문학적 글쓰기 [크리틱]수정 2025-03-05 18:49 등록 2025-03-05 17:01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문학적 글쓰기를 시작하던 20대 청춘 시절부터 늘 글의 내용 못지않게 문체에 관심이 가곤 했다. 곰곰이 생각건대 나를 문학에 빠지게 만든 중요한 동기는 문체의 힘과 아름다움이지 싶다. 가령 “세계가, 내가 없어도 내가 있을 때와 똑같이 활기를 띠고 진행되리라는 것을 느낄 때의 허무감” 같은 문장을 통해 비평가 김현 특유의 문체가 지닌 고유한 개성을 느꼈다. “나는 언제나 이국(異國)의 어느 도시에 아무 가진 것 없이 홀로 도착하는 것을 꿈꾸었다”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을 번역한 김화영의 단정한 문장이 지닌 상큼한 매력도 내 청춘을 통과한 원체험이다. 이런 문장과..

책이야기 2025.03.09

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

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력 : 2025.02.26 20:55 수정 : 2025.02.26. 21:00 박영택 미술평론가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학생들과의 수업은 힘들다. 그들은 두꺼운 종이책 자체를 꺼린다.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요약·정리하는 PPT로 진행되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학생들의 발표도 PPT로 이루어진다. 대개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정보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정보를 복사해서 짜깁기로 이룬 것들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책의 갈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유를 톺아보는 게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들을 그대로 옮겨와 읽어대는 학생들의 발표를 듣는 일은 곤혹스럽다. 힘겨운 독서와 고단한 사유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의 과제는 마냥 건조..

책이야기 2025.02.28

발견하는 글쓰기

발견하는 글쓰기입력 : 2025.02.26 20:58 수정 : 2025.02.26. 21:08 오은 시인  얼마 전부터 글쓰기 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강의 제목은 ‘발견하는 글쓰기’다. 학교나 기관에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연속 강의는 잘 수락하지 않는데 용기를 냈다. 글쓰기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하고 커다란 용기로 마무리되니까. 내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글쓰기가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 쓸 사람들과 함께 초심도 살피고 싶었다. 글쓰기에 입문할 적에 나는 글을 통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글을 쓰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는 사실을 안다. 작은 용기가 커다란 용기가 되듯, 작은 질문이 커다란 질문으로 변모하는 것이..

책이야기 2025.02.27

시끌벅적한 도서관

시끌벅적한 도서관입력 : 2025.02.10 20:55 수정 : 2025.02.10. 21:00 변재원 작가  덴마크 여행길 3일 차. 덴마크 제2 도시 오르후스에 도착 후 먼저 향한 곳은 시립도서관이었다. 오르후스 도서관은 미국 타임지가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독창적인 도서관 디자인과 바다 전망과 자연광이 투명하게 들어오는 건물 설계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지평을 넓히는 혁신성이 주된 선정 이유였다. 오르후스 도서관 천장에는 서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종이 설치되어 있다. 이 커다란 종은 세계에서 가장 큰 튜브 벨이다. 이 종은 특이하게도 오르후스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울릴 수 있다.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에 부모들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버튼을..

책이야기 202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