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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와 짝퉁

오마주와 짝퉁 수정 2025.05.29 20:58 김지연 사진작가 5월을 보내며. 2025. ⓒ김지연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의미하며, 예술에서 원작자의 작품을 참조하거나 재구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짝퉁은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은 2009년 5월23일이다. 나는 그날 시골에서 전구를 사려고 철물 가게에 들렀다. 철물 가게에는 오래된 텔레비전이 있었다. 화면에서 속보로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알리는 뉴스가 나왔다. “할아버지, 저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물었다. “글씨, 나도 무슨 소린지 모르것네요”라고 할아버지도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밖으로 나왔더니 어느 집 담장에 빨간 장미가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그 뒤로 매년 장미가 피는 오월이 ..

사진놀이 2025.05.30

한 시절 잘 살았다

한 시절 잘 살았다송경동 나는 내 시에푸르른 자연에 대한 찬미와 예찬이 빠져 있음을한탄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부드러운 사랑에 대한 비탄과 환희가 빠져 있음을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저 드넓은 우주에 대한 경배와 경이로움이 빠져 있음을억울해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빛나는 전망과 역사에 대한 확고한 낙관이 반영되지 못했음을그닥 반성하지 않는다 가령 뜨거운 화덕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가령 뙤약볕과 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가령 착취와 차별과 폭력과 모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한 시절 인연이 그들 곁이었으므로그들의 비천하고 비좁은 이야기로 내 시가 가득찼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 시절 인연이충분히 고귀하고 행복한 세상과 절연하고고통만이 전부인 세상과 교통하는 일이었으므로그 절규와 아우성으로부터내 시가 몇 발..

시를읽다 2025.05.30

응답하려는 자와 응징하려는 자

응답하려는 자와 응징하려는 자 수정 2025.05.29 20:59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대선 후보자 토론회도 모두 끝나고 사실상 투표만 남았다. 도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한심해하면서도 세 차례 토론회를 다 보고 말았다. 토론회 전체를 통틀어 그나마 의미 있다고 생각한 시간은 40초 정도다. 그것은 두 번째 토론회 날 이준석 후보의 질문에 권영국 후보가 답변하던 장면에서 나왔다. 이준석 후보는 전장연과 동덕여대 사태를 언급하며 권영국 후보에게 “대통령이 된다면 사회질서를 훼손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권영국 후보는 “질문이 잘못됐다”며 “전장연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

칼럼읽다 2025.05.30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믿음 [포토에세이]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믿음 [포토에세이]윤운식기자수정 2025-05-26 18:54 등록 2025-05-26 17:21 대낮 도로를 달리다 깜깜한 터널에 들어오면 더 어둡게 느껴진다. 항상 그랬듯이 자동차의 라이트를 켜고 흔들리는 불빛을 보면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터널의 끝에서 암흑을 밀고 들어오는 햇빛이 보이게 된다. 어둠을 통과하리라는 예측은 끝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신뢰는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사진놀이 2025.05.29

누가 너더러 시쓰래?

누가 너더러 시쓰래?박노식 여럿이 국밥을 먹는데 잘 안 들어간다특도 아니고 보통인데도 그렇다남들은 술잔은 돌려가면서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고 농을 던지고물티슈로 얼굴과 목덜미까지 닦아내는데식어가는 국밥 앞에서내 이마엔 식은땀만 송골송골 맺히고개미가 등을 물어뜯는 순간처럼온몸 여기저기서 따끔거린다이들 중에 내 시집을 구매한 자는한 명도 없고, 하지만나는 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오물오물 씹으며 속으로 시 한 편씩을 외웟다국밥 한 그릇이 9,000원, 시집 한 권이 9,000원나는 내 길을 가고 있을 뿐인데어째 좀 서러운 느낌이 스멀스멀 콧등으로 올라온다그렇게 시 열편을 외우는 동안이들은 소주 열 병을 비우고국밥 한 그릇을 추가했다반절도 더 남은 국밥 속에서 창백해져 가는내 얼굴을 그대로 묻어둔 채 밖을 보았..

시를읽다 2025.05.29

이준석, 그 ‘압도적 해로움’

이준석, 그 ‘압도적 해로움’입력 2025.05.28 16:29 플랫팀 기자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바바리맨’은 일상이었다. 30년 넘게 기자로 일했다. 성희롱은 다반사였다. 그래도 생각 못했다. 대선 후보 TV토론회 생중계를 보다 성폭력적 여성혐오 표현에 노출될 줄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이하 이준석)의 문제 발언은 옮기지 않겠다. 방송사들은 유튜브에서 해당 발언을 삭제해야 마땅하다. 이준석의 폭력이 기막힌 이유는, 스스로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져서다. 바바리맨 마주칠 때도 비명은 질렀다. 취재원에게 성희롱 당하면 항의하고 사과받았다. 그런데 이준석은 무방비 상태에서 온 국민을 상대로 폭력을 저질렀다. 심지어 그는 토론회 종료 후 17시간이 지나도록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기자들이 묻자 ..

칼럼읽다 2025.05.29

경계선 지능을 위한 고교학점제

경계선 지능을 위한 고교학점제 수정 2025.05.26 21:35 이범 교육평론가 ‘경계선 지능’이란 아이큐(IQ) 71에서 84 사이를 의미한다. ‘지적 장애’는 아이큐가 70 이하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경계선 지능은 공식적으로 장애가 아니다. 하지만 학습이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하곤 한다. 그 숫자는 인구의 14%로서 700만명에 달한다. 참고로 나라마다 경계선 지능의 아이큐 범위가 다르게 설정돼 있다. 14%라는 비율은 한국의 경우 그렇다는 뜻이다. 요새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평균 20명이니 그중 3명 정도가 경계선 지능이다. 이들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다음 중 어떤 학교에 제일 많이 진학할까? 1번 특목고, 2번 자사고, 3번 특성화고, 4번 일반고. 적지 않은 사람..

칼럼읽다 2025.05.27

코 없는 코끼리

코 없는 코끼리 수정 2025.05.25 21:29 복길 자유기고가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졌다. ‘왜 코가 없지?’ 코끼리의 몸을 아무리 더듬어도 내 손끝은 눈을 감기 전 보았던 ‘코 없는 코끼리’의 형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내 모든 감각이 시각 속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정답을 적었는데도 자꾸만 틀렸다고 하는 이상한 시험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처음 느끼는 막막함이었다.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는 ‘본 것’ 대신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으로, 시각 예술이면서도 시각 중심의 감각을 전복시킨다.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코끼리를 이해했던 경험을 조각으로 복원해 시각에만 의존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 시각을 차단해야만 알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해 말한다. 감각의 체계가..

칼럼읽다 202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