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84

혼신의 글쓰기, ‘김윤식 전시회’에서

혼신의 글쓰기, ‘김윤식 전시회’에서입력 : 2025.01.02 21:23 수정 : 2025.01.02. 21:29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밋밋하게 끝나지 않고 뿔처럼 하루가 더 있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12월 31일. 복면한 괴한인 듯 아라비아 숫자 즐비한 달력에서 지난 1년을 휘감으며 등대처럼 밝힌다. 그냥 하루, 여느 날처럼 지나치기엔 내 간이 너무 작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건 비장한 일이다. 기괴하고 희한한 일들이 마구마구 범람해서 정신을 모으기가 몹시 힘들다. 해가 뜨고 다시 달이 뒤쫓아 오기까지,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보자기에서 이 마지막 날은 목석같은 나에게도 좀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무엇으로 다시 못 볼 갑진년을 마무리할까. 참..

책이야기 2025.01.03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공자와 논어를 넘어... 재독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4.12.26 17:37l최종 업데이트 24.12.27 09:00l 노태헌(rth922)  연말이다. 크리스마스까지 지나갔다. 사람은 늘 생각을 하며 살아가기에 또다시 한해를 되돌아본다. 한해를 무턱대고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좋았던 기억들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아 보인다. 한 해 동안 목표로 하였으나 이루어 내지 못한 것들도 떠올린다. 이런저런 상념과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는 걷기나 책의 도움을 받아 본다. 그러한 행위들 속에서 또 다른 상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샛길은 처음에 밀려왔던 부정적인 감각에서 조금 벗어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을 먹고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뽑아 든..

책이야기 2025.01.02

‘살았다’는 문장 다음

‘살았다’는 문장 다음입력 : 2025.01.01 20:57 수정 : 2025.01.01. 21:01 인아영 문학평론가  잊고 있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계엄령이 내려지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착륙하려던 여객기의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2024년 말은 참으로 잔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은 세월호 10주기이기도 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억해야만 하는 일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 기억을 위한 에세이에서 김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을 살았다./ 살았다고 끝나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죽었다고 끝난 문장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 기억..

책이야기 2025.01.02

뜨거운 말

뜨거운 말입력 : 2024.12.22 20:52 수정 : 2024.12.22. 20:54 이설야 시인  뜨거운 것을 쓰다 쏟았습니다 미안해요 부치진 못할 것 같군요 미지근한 건 문학이 아니야, 말하는 어른 여자를 만난 저녁 주꾸미를 먹었습니다 뛰지 않는 심장과 뛰려는 심장 사이에 사랑을 접어놓고 마음이란 뭘까요 호호 불어 먹고 싶은 마음이란 어디에 간직해야 하는 걸까요 당신은 오늘 내 손을 꼭 잡고 귓속에 뜨거운 말을 부어주었습니다그것을 안고 멀리 갈 거예요당신이 나를 처음 본 날,쉬운 퀴즈를 풀듯 나를 맞혀버렸다는 걸 기억할 거예요 당신이 좋아서다가가고 싶지가 않아요 겨울 숲에봄 아닌, 다른 계절이 오면 그때 갈게요 박연준(1980~)  차가운 말보다는 뜨거운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혀는 어느새 차가운..

책이야기 2024.12.23

내가 있는 자리에 내가 없는 건 아닐까

내가 있는 자리에 내가 없는 건 아닐까배정한의 공간이 전하는 말수정 2024-12-13 13:16 등록 2024-12-13 12:01  혼자 밥 먹는 건 세상 외로운 일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혼밥’이 편하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학교 식당에서 둘러보면 어림잡아 절반은 스마트폰을 친구 삼은 혼밥족이다. 나는 단 15분이라도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자는 마음으로 한 손에 잡히는 가볍고 얇은 책 한 권을 들고 식당에 간다. 가장 아끼는 동반자는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 아무 데나 펼쳐 두세쪽 읽으며 혼밥을 즐긴다. 표지가 너덜너덜해져 다시 샀는데, 얼마 전엔 그만 된장국을 엎질러 또 한 권을 샀다. ‘내가 있는 곳’은 영국 런던의 인도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로드아일..

책이야기 2024.12.15

한강 “느낀 감각들 문장에 불어넣어…언어, 우리를 잇는 실이라 실감”

한강 “느낀 감각들 문장에 불어넣어…언어, 우리를 잇는 실이라 실감”동아일보업데이트 2024-12-08 10:582024년 12월 8일 10시 58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고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합니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에.”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7일(현지시간) 31년간의 집필 인생을 회고했다.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을 낭독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은 노벨 주간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진다. 한강의 강연에는 스웨덴 현지 교민, 국내 출판사 관계..

책이야기 2024.12.14

심장에 남은 만남과 인연 [서울 말고]

심장에 남은 만남과 인연 [서울 말고]수정 2024-12-01 18:57 등록 2024-12-01 16:45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가족을 제외하고 생의 전반을 뒤흔드는 결정적 만남을 몇번이나 경험할까? 때로 책과의 만남이 도끼처럼 우리 정수리를 내리치고 삶을 뒤흔들듯 어떤 인물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11월의 마지막, 내게 그런 인연을 열어준 이를 만나러 일본 요코하마에 갔다. 그의 아버지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이었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에서 난 그는 분단된 조국의 뒤편에서 차별받는 조선인으로 살며 온몸에 아픈 역사를 새겼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아버지의 고향 경상도로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자식들을 조선학교에 보내 ..

책이야기 2024.12.06

12월은 무려 31개의 날을 안고 있다

12월은 무려 31개의 날을 안고 있다목표를 수정하고 다시 노력해 보려 합니다24.12.01 10:08l최종 업데이트 24.12.01 10:08l 박정은(bacaswon)  새로운 웹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보통 100화를 목표로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는 정해진 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만의 목표다. 아마도 재미있게 읽었던 몇 개의 작품들이 대략 그 정도 선에서 완결하는 걸 본 탓에 내 안에 기준이 세워진 것 같다. 목표가 그러했지만, 지금껏 내가 완결했던 소설들의 회차 수는 꽤 다양하다. 60화 언저리에서 끝난 것도 있고, 100화에 근접한 97화나 93화 정도에서 마무리한 것도 있다. 좀 짧게 끝난 소설은 e북 두 권짜리로 출간이 되었고, 100화에 근접한 소설은 세 권짜리로 출간이 되었다...

책이야기 2024.12.03

한강 이후의 한국 문학과 출판

한강 이후의 한국 문학과 출판 이광호(문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대표) 2024. 11+1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24년 10월 10일은 한국 문학사와 출판 문화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에 대한 한국인의 갈증은 ‘서구=중심=보편’이라는 ‘타자’의 인준을 목말라하는 것이었고, 한국 문학이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속해 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 중심의 ‘보편’이란 그 자체로 제국주의적 허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문학과 지식 시장에 일종의 위계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세계 문학’이 영어·불어·독어로 창작된다는 것도 허위이지만, 그 허위가 오랫동안 세계 문학 시장을..

책이야기 2024.11.28

단어의 시민권에 대하여

단어의 시민권에 대하여입력 : 2024.11.26 20:58 수정 : 2024.11.26. 21:02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기 1세기 로마에 포르켈루스(Porcellus)라는 사람이 살았다. 싸움 잘하는 장군도, 말 잘하는 정치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도, 멋진 근육의 검투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문법 학교의 교사였다.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라틴어 ‘훈장’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라틴어 문법에 어긋나는 말을 하거나 어떤 단어나 문장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말과 언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숨까..

책이야기 202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