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92

종이책,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종이책,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입력 : 2024.02.07 19:56 수정 : 2024.02.07. 19:58 장동석 출판평론가 중국 서진(西晉) 시대, 좌사(左思)라는 문장가가 있었다. 그가 10여년 각고의 노력 끝에 써낸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 도읍의 풍물에 관한 책 는 당대 지식인들의 총애를 받는 작품이었다. 그 책을 베껴 읽는 이들이 늘어나자 당시 도읍이었던 낙양의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낙양지귀(洛陽紙貴), 즉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라는 말은 그렇게 탄생했다. 시시때때로 베스트셀러가 탄생할 때면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말이었는데, 근자에는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도 없는데,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지난 몇년 사이 종이값은 50%가량 올..

책이야기 2024.02.08

오히려 길치여서 쓸 수 있었던 서울 산책길 이야기

오히려 길치여서 쓸 수 있었던 서울 산책길 이야기 [책이 나왔습니다] 24.02.01 14:05l 최종 업데이트 24.02.01 14:33l 이상헌(shee) ▲ 길 위에서 배우는 교과서 : 서울 편 (북스토리) 지난 3년간 50여 꼭지로 연재를 했던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기사에는 넣지 못했던 사진과 상당 부분의 내용을 바꿔서 출판했습니다. ⓒ 북스토리 이 책으로 켜켜이 쌓인 역사의 한 층을 벗겨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한민족의 모든 행위와 인프라가 흥 멸하면서 생긴 역사가 겹겹이 지층을 덮고 있습니다. 한 걸음 내디디면 역사의 궤적이 드러나고 두 걸음 옮기면 흐름이 보입니다. 50 꼭지, 즉 50여 장소를 찾은 발걸음과 200여 장의 사진으로 총 300쪽..

책이야기 2024.02.07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만든 책은 처음... '오히려 좋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만든 책은 처음... '오히려 좋아' [편집자가 독자에게] 조기현, 홍종원 대담집 를 펴내며 24.02.02 20:26l최종 업데이트 24.02.02 20:26l김경훈(insain) 1월 중순 출간된 대담집 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했던 솔직한 생각이다. 원래 나는 조기현 작가님이 에 쓰신 '영 케어러'라는 연재 기사를 묶어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는데(이매진 출판사에서 이란 제목으로 2022년 2월에 출간됐다), 조 작가님은 내게 방문진료 의사인 홍종원 작가님과 돌봄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대담집을 제안하셨다. 둘만 아는 이야기로 빠지지 않도록 진행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셨다. 조 작가님이 쓰신 , 홍 작가님이 에 연재하신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두 ..

책이야기 2024.02.04

이태준과 좋은 글

이태준과 좋은 글 입력 : 2024.01.31. 20:22 인아영 문학평론가 고통받지 말라(Don’t suffer). 어느 피아니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들은 말이다. 빠르고 세게 연주할 때 거의 피아노 건반을 부술 만큼 힘이 잔뜩 들어가기 쉽지만, 그러면 연주자가 괴롭기만 할 뿐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조언이었다. 정확히는 힘을 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영할 때 힘을 빼야 부드럽고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그래야 풍부하고 질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마음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망친다. 하지만 글쓰기가 직업이면서도 모니터 앞에서 지나치게 고통받지 않은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는 동시에 궁금했다. 고통..

책이야기 2024.02.03

이 칼럼니스트가 논쟁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

이 칼럼니스트가 논쟁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 [서평] 위근우 지음 24.01.25 11:48l최종 업데이트 24.01.25 11:48l 이지애(urban07) ! 이 책 제목이 딱 눈에 띈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정기적으로 뭔가를 써내야 하는 괴로운 내 속마음이 그대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사정이길래 그토록 글쓰기가 귀찮은지 궁금했다. 책을 집어 들고 서문을 읽는데 어라? 재밌기까지 하네! 글이 귀찮은 이유는 아무리 잘 쓰려해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똥을 빚는 중일 수 있기 때문이라나? 공감의 실소까지 뿜게 했으니 책을 도로 놓을 수가 없다. 집으로 고이 모셔 와 속속들이 읽어 보니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라 신선했다. 대개의 글쓰기 책들이 권하는 여러 방법, 필사를 해라, 루틴..

책이야기 2024.01.30

"잘 팔리는 책보다는..." 속초 독립서점 운영자의 바람

"잘 팔리는 책보다는..." 속초 독립서점 운영자의 바람 [인터뷰] 속초 북스테이 운영자 최세연 24.01.26 18:44l최종 업데이트 24.01.26 18:44l 김민준(coolboy95) '서울공화국'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다. 그만큼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몰려들고 지방에 있던 것들도 끌어당기는 형국이다. 자연스레 지방소멸 역시 모두의 고민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와중에 다른 방식의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당연히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 서울이 아니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당연한 삶'에 질문하는 이들에게 주목하던 와중, 속초의 이라는 북스테이를 알게 됐다. 몇 개의 언론 기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 중 ..

책이야기 2024.01.27

새해 일기 쓰기 목표 세운 사람은 꼭 보세요

새해 일기 쓰기 목표 세운 사람은 꼭 보세요 [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수정 2024-01-13 21:24 등록 2024-01-13 18:00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독서의 완성은 완독이 아닌 기록’이라는 문구를 보고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책을 몇 권 읽었다는 것에만 욕심을 내다가, 읽은 책 내용을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원래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뭔지에 대해서는 잊게 됐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왜 그렇게 글을 쓰려고 해?” “모든 게 살아 있도록 하는 거야. 결국 죽게 될 것들을 보호하는 거지. 글로 남겨놓으면 영원할 테니까.” 잊는다는 게 축복일 때도 있지만 오래 남겨두고 싶은 것까지 잊히는..

책이야기 2024.01.14

어린이의 집필실

어린이의 집필실 입력 : 2023.03.04 03:00 수정 : 2023.03.04. 03:02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어린이의 시간은 현재형이다. “어렸을 때는 나도 그랬지”라거나 “어린이는 장차 크게 될 거야”라는 말은 소용없다. 지금 안 놀면 놀 수 없다. 현재의 어린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어린이는 위험해진다.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3에 대해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 법은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민식 어린이의 죽음 이후 마련된 법이다. 이제 어린이는 학교와 어린이집 앞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속도를 존중받게 되었다. 헌재는 8 대 1 의견으로 겁에 질린..

책이야기 2024.01.13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입력 : 2023.06.24 03:00 수정 : 2023.06.24. 03:01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서울 혜화동은 나에게 각별한 장소다. 오래전 나는 이 계단을 올라가 붉은 벽돌 건물 2층의 밀다원이라는 카페를 찾아갔다. 공간의 외부와 내부가 흐르듯 연결된 이 건물은 1979년에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곳으로 당시 정채봉 선생님이 주간으로 있던 ‘샘터’ 사옥이었다. 나는 동화 쓰는 일에 흥분과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신인작가였다. 당시 밀다원은 나와 비슷한 설렘을 지닌 사람들 몇몇이 모여 책과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건물 아래층엔 샘터파랑새극장이 있어서 어린이극이 공연되곤 했다. 줄지어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는 ..

책이야기 2024.01.13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입력 : 2023.08.18. 20:48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한때 이런 직업을 가져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기억 발견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업무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제목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가끔 내게 “이 이야기가 어떤 동화인지 알아요?”라고 잊어버린 추억의 책 제목을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어떤 아이가 천둥치는 날 가게에서 케이크를 훔치는데” 하며 기억 속 한 장면을 풀어놓는 식이다. “그 케이크 초록색이죠?”라고 대꾸하면 “맞아요! 제가 그 책 정말 좋아했어요”라며 얼굴이 환해진다. 내가 제목까지 맞히면 상대방은 그리움 가득한 눈빛이 된다. 어린 시절의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성장은 기억을 덮어쓰는 과정이라서 아무리 즐거웠더라도..

책이야기 202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