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93

당신의 올해 첫 책

당신의 올해 첫 책 입력 : 2024.01.03 22:25 수정 : 2024.01.03. 22:35 인아영 문학평론가 새해 첫날 듣는 음악이 그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운 미신이지만, 그저 다가올 해를 잘 가꿔보고 싶은 평범한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첫 음악은 이미 들어버렸고 은행에서 제공하는 신년 사주도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면? 그래서 새로운 삶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질 좋은 내러티브를 찾는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새해의 첫 책을 고를 차례다. 음악이라면 새해가 가사를 따라간다고 믿듯 소설이라면 줄거리를 따라간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말할 수는 없다. 범죄 소설을 읽는다 해서 범죄를 옹호하는 게 아니듯,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삶의 소스는..

책이야기 2024.01.04

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입력 : 2023.12.17. 20:16 김현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 센터장 웹툰을 자주 본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중독 수준이다. 수만권의 만화책에 시간을 쏟아붓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건실한 인간이 되었을 것 같다는 후회 때문에 조금은 자중했지만, 몇번의 입원과 잦은 출장을 핑계로 결국 이 새로운 형식의 만화에 흠뻑 빠져들고야 말았다. 이제는 틈이 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이 안온하고 유쾌한 세계로 자연스레 향한다. 만화책에 익숙한 독자 입장에서 요즘 한국 웹툰의 수준은 놀랍다. 스크롤을 이용해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펼침면과 컷을 리드미컬하게 다루며 몰입감을 이끌어내던 전성기 출판 만화들에 비해서도 탁월하며, ..

책이야기 2023.12.30

당신이 동시대인이라는 영광

당신이 동시대인이라는 영광 입력 : 2023.11.05 20:27 수정 : 2023.11.07. 16:13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거대한 동시대인’이라는 말을 만지작거린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 에서 발견한 표현이다. 이 책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 관한 글이 실려 있는데 애트우드가 거장일 때 쓴 원고인데도 보부아르를 향한 흥분감이 역력하다. 오래전 토론토에서 대학을 다니던 젊은 애트우드에게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카뮈와 베케트와 사르트르 같은 명사들 사이에서 여자는 딱 한 사람 뿐이었고 그게 보부아르였으니 그에 대한 애트우드의 선망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스무 살의 애트우드는 생각했다. “초특급 지성들이 모인 파리의 올림포스 산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여성. 그녀..

책이야기 2023.12.26

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

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 입력 : 2023.12.24. 19:49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작가의 데뷔를 결정하는 사람은 누굴까? 데뷔 작가의 대부분은 출판사나 신문사 혹은 문학상의 심사위원들로부터 발탁된 바 있을 것이다. 입구가 바늘구멍처럼 작을수록 등용문은 멀어지고 높아지고, 그렇기에 더욱 권위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편집자나 심사위원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 이들은 극소수다. 선택받지 못한 다수는 포기하거나 재도전하며 특수한 시험대를 통과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누군가의 승인 없이 스스로 데뷔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새롭게 길을 낸다. 독자와 작가 사이 관문 건너뛰기 12월16일. 시인 계미현은 웹사이트 형태로 첫 시집을 발표했다. 디지털 영토 위에 지어진 이 시집엔 그의 글을 정..

책이야기 2023.12.25

책과 출판에 대하여

책과 출판에 대하여 입력 : 2023.12.20 22:30 수정 : 2023.12.20. 22:36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어쩌다 보니 책과 출판을 말하는 자리에 꾸준히 나가게 되었고 어느덧 그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이맘때면 올해의 출판 트렌드와 내년을 전망하는 자리가 꾸준하다. 책을 출간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에 나올 책들은 목록뿐 아니라 대략의 일정까지 결정되어 있을 터, 실제로 내년에 세상에 나와 독자를 만날 책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훨씬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자료 취합 과정과 각 출판사의 정보 공개 상황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겠다. 각 언론사와 몇몇 서점에서 개별 자료를 취합하여 전하는 소식 정도로 아쉬움을 달..

책이야기 2023.12.23

작가 된 아이들의 소감 '이 수업 다신 안 들을래요'

작가 된 아이들의 소감 '이 수업 다신 안 들을래요' [2023년 올해의 ○○] 24명 중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낸 책들을 소개합니다 23.12.17 14:44l최종 업데이트 23.12.18 11:43l 장순심(baram1177) 2023년의 출판시장이 위기라고 한다. 출판 매출은 5% 내외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2021년부터 연속 3년간의 침체라고 한다. 거기에 제반 비용(제작과 물류, 종이)의 인상은 이익률의 감소로 연결된다. 출판에 종사하는 우수한 인력들은 자연스럽게 타 업종으로 유출되고, 출판시장은 총체적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출판시장의 이러한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관심이 크다. 많은 이들이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지인들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

책이야기 2023.12.18

작가의 작가

작가의 작가 코맥 매카시(1933~2023). EPA 연합뉴스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가장 많이 또 가장 열심히 읽을까? 누가 조사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 답은 소설가(지망생 포함)가 아닐까? 그다음은 소설 생산과 관련된 “업계” 사람들. 물론 작가 자신이 독자를 동업자에 한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쓰고 또 읽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는 소설가를 낳고 양육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소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지되는 동시에 소설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내 소설을 읽어주겠지 하는 실낱같은 기대에 기적처럼 부응하는 마지막 독자 집단으로서, 말하자면 소설의 최후 보루가 되는 셈이다. ..

책이야기 2023.12.17

헌 책의 가격

헌 책의 가격 헌책들. 위키미디어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방송인 유병재씨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범우사, 1976) 초판본(정확하게는 초판 초쇄본)을 구입했다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공개했다. 정가는 280원. 구입가격은 100만원. ‘드디어 소유합니다’라는 그의 진술과 ‘무소유'라는 책 제목, 그리고 심상치 않은 가격은 서로 어긋나면서 하나의 재담을 구성하는데, 많은 이들이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왜 책을 100만원이나 주고 사느냐고 화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저런 희귀본이 아니더라도 중고 책의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나는 평생 새 책보다 헌책을 더 많이 샀다고 생각하는데, 지켜 온 원칙이 하나 있다. 헌책 가격이 현행 정가의 55% 이상일 때는 포기한다는 것이..

책이야기 2023.12.17

"이런 제목은 어떻게 뽑아요?" 답변드립니다

"이런 제목은 어떻게 뽑아요?" 답변드립니다 [제목의 이해] 시인의 눈으로 보기 23.12.14 11:23l 최종 업데이트 23.12.14 11:23l 최은경(nuri78)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보게 된 사연 하나. 이라는 책을 본 독자가 그 책을 출간한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단다(서로 아는 사이인 듯). "이렇게 멋진 중제(아마도 제목 옆의 부제를 말한 것 같음 - 기자말)는 어떻게 뽑아요?"라고. 그랬더니 돌아온 말. "원고에 있는 말이에요 ㅎㅎㅎ" 나도 이와 비슷한 말을 종종 했더랬다. "제목 괜찮다"는 말에 별달리 할 말이 없을 때. 그 문장은 내가 지은 게 아니고 본문에 있는 내용으로 뽑은 게 사실이니까. 이 독자가 '멋지다'라고 한 문장은 '우리에겐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하다'였다. 에..

책이야기 2023.12.17

나는 한 번도 혼자 쓴 적이 없었다

나는 한 번도 혼자 쓴 적이 없었다 [올해의 ○○] 글쓰기가 이끈 만남과 응원 23.12.14 17:49l최종 업데이트 23.12.14 17:49l 김현진(slowsteps) 삶이 마련해 둔 뜻밖의 기쁨과 응원이 언제고 내게 알맞게 도착했다. 글로 또박또박 적을수록 그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니까 새해에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럴 것임을 기억한다. 오늘도 응원하고 응원 받았던 과거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미래의 응원을 적어 나간다. 혼자 쓰는 글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져 스스로를 의기소침하게 만들 때가 많다. 쓰는 일은 나라는 벽 앞에 홀로 서는 일이라서. 그걸 감내해야 글을 완성할 수 있지만 과정에서도 홀로인 건 아니다. 지칠 때마다 나라는 벽에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때마다 행운처럼 누군가를..

책이야기 202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