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98

한창훈의 ‘지금, 이 문장’ [.txt]

한창훈의 ‘지금, 이 문장’ [.txt]수정 2025-05-23 13:05 등록 2025-05-23 13:00 1975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된 박상륭 선생의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 두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읽어내기가 말 그대로 용이치 않았기 때문. 보기도 전에 두께에 이미 질렸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이 소설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동녘 운산, 북녘 눈뫼, 서녘 비골 대신 갈증이 계속되는,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 모인다”는 첫 문장에 정신이 휘청거렸고 뒤에 나오는 이 문장에서는 완전히 영혼이 털려버렸다. 3인실에 있었고 내 옆 환자가 말기 암 노인이었는데, 툭하면 아들과 딸..

책이야기 2025.06.08

'문단에 등단을 했다' 이 말의 의미

20.09.15 17:12ㅣ최종 업데이트 20.09.15 17:20'문단에 등단을 했다' 이 말의 의미[시인에 대해 궁금하세요?] 문학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주영헌(yhjoo) 문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비슷한 질문으로 '어디에 소속되어 있나요'라는 말도 가끔 듣게 되죠. 소속에 관련한 질문도 문단과 비슷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런 질문에 저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등단=문단=시인'이라는 공식이 깨어져 버리니까요. '시인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는가?'는 질문도 받습니다. 이 질문은 등단이라는 것이 자격증처럼 이름이 쓰여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등단'이라는 의미 먼저 등단이라는 제도를 알아보겠습니다. ..

책이야기 2025.06.06

긁혔네, 그래서 말인데

긁혔네, 그래서 말인데 수정 2025.06.01 20:47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요즘 젊은 세대들은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나 좀 긁혔어’나 ‘긁?’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쓴다. 마치 물리적으로 긁힌 듯 들리지만, 사실 이는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삐지거나 불쾌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단순히 신조어의 등장이라고 보기 쉽지만, 어쩌면 우리는 ‘긁다’라는 단어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살펴보면 ‘긁다’에는 ‘남의 감정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자극하다’라는 뜻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다’라는 관용구처럼, 이는 단순히 피부를 긁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결국 ‘긁히다’가 ‘삐지다’ ‘상처받다’처럼 쓰이는 것은 완전히 새..

책이야기 2025.06.02

세계 최고의 책벌레 나라 아이슬란드

세계최고의 책벌레 나라 아이슬란드.. 재밌는 이모저모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대우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이슬란드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뱃속에 자신만의 책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을만큼 아이슬란드는 인구 대비 저술가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인구 약 32만명 중 1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10%나 된다. 저자가 많은만큼 출판업, 서점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독서 토론프로그램이 TV 황금시간대에 편성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인기선물로는 언제나 책이 1위를 차지한다. 크리스마스를 약 2달정도 앞둔 이맘때쯤에는 전국 서점마다 신간 서적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곤 한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책사랑은 국제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

책이야기 2025.06.01

‘책 읽는 나라’ 위한 ‘진짜 공약’은 왜 없나 [.txt]

‘책 읽는 나라’ 위한 ‘진짜 공약’은 왜 없나 [.txt]백원근의 출판 풍향계수정 2025-05-30 09:40 등록 2025-05-30 05:00 여성가족부의 ‘2024년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매체는 쇼트폼(짧은 영상)이 94.2%로 가장 높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제외한 종이책 이용률은 69.0%, 웹툰 59.3%, 인터넷 잡지와 전자책은 25.4%였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이미 책을 읽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시키니 대부분 책을 읽을 것이라는 통념과 다르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보고서’에서도 13살 이상 국민의 연간 독서율은 2013년 62.4%에서 2023년 48.5%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스마트폰의 보급 ..

책이야기 2025.06.01

이 책방에 세면대가 두대인 이유 [.txt]

이 책방에 세면대가 두대인 이유 [.txt]우리 책방은요수정 2025-05-23 14:30 등록 2025-05-23 14:00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큰새’. “손이라도 닦고 가세요”라고 적힌 철제 선간판이 눈길을 끈다. 책방지기 제공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북적거리는 중심가를 조금 지나면 입구부터 유쾌한 기운을 머금은 서점 하나가 있다. “손이라도 닦고 가세요.” 이렇게 적힌 철제 선간판이 행인들을 향해 손짓하는 듯하다. 책방 이름은 ‘큰새’. 25평 규모 아담한 책방이지만 이름만큼은 ‘큰새’다. 우리 책방은 대형 서점과는 조금 다르다. 빼곡한 신간 코너, 시끌벅적한 베스트셀러 랭킹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대신 서가에 비치한 책들마다 손 글씨로 써 내려간 문장이 붙어 있..

책이야기 2025.05.25

부글부글·풍덩…감정에 색깔 입히는 의성의태어 [.txt]

부글부글·풍덩…감정에 색깔 입히는 의성의태어 [.txt]신견식의 세계 마음 사전 추상적 감정 구체화하는 의성의태어 한국·아시아·아프리카어에 많아 복잡한 감정의 결 살려 생동감 더해 수정 2025-05-24 17:51등록 2025-05-24 02:00 ‘부글부글’은 원래 액체가 계속 야단스럽게 끓어오르는 소리나 모양을 일컫는데 울화나 분노, 언짢은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모양도 빗댄다. 게티이미지뱅크 언어 기호의 자의성은 언어학자 소쉬르가 주창한 이래로 널리 알려진 언어학의 기본 개념이다. 예컨대 한국어 ‘나무’, 중국어 ‘木’, 영어 ‘tree’의 말소리는 이것이 일컫는 말뜻과 아무 상관이 없다. 추상명사로 가면 그 정도는 더한데 ‘사랑’, ‘愛’, ‘love’가 왜 하필 그 뜻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책이야기 2025.05.25

존재는 실천을 통해 증대된다 [.txt]

존재는 실천을 통해 증대된다 [.txt]수정 2025-05-09 14:02 등록 2025-05-09 14:00 오스트레일리아의 간병인 브로니 웨어는 수많은 말기 환자를 돌보며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쏟아내는 후회가 대체로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내용을 정리해 ‘나의 오늘은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원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는 책을 냈다. 그 다섯 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통장 잔액을 더 늘리지 못한 후회, 강남 8학군 50평대 아파트에서 살지 못한 후회, 서울대·하버드대·예일대에 가지 못한 후회 같은 건 없다.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다.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못 번 ‘돈’이 아니라 못 살아본 ‘시간’을 후회한다. 소..

책이야기 2025.05.17

소설 쓰기는 솔직히 괴롭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말 짜릿하고 재밌어요

소설 쓰기는 솔직히 괴롭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말 짜릿하고 재밌어요. 절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마지막엔 예상 못 한 곳에 도착해 있는 게 너무 매력적이거든요. 강보라 작가 들어가며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그 불확실성에 기꺼이 이끌리는 사람.4월의 햇살 아래, 강보라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약 15년간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에서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독립 에디터로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소설도 함께 쓰고 있어요. Q.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바우어의 정원』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계신데요, 최근의 근..

책이야기 2025.05.16

도서전 논쟁을 지켜보며 [.txt]

도서전 논쟁을 지켜보며 [.txt]책거리양선아기자 수정 2025-05-03 10:40 등록 2025-05-03 07:00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의 모습. 양선아 기자 서울국제도서전을 둘러싸고 최근 일주일 동안 출판계가 요동쳤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도서전 운영을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한 것을 두고 ‘사유화’라고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고, 출협은 “도서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치였지, 사유화가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한겨레’는 양쪽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출판인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말과 언어를 다루고,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를 정성스럽게 길어 올려 책이라는 형태로 빚어냅니다. 말의 숲에서 길을 내는 이들이기에, 출판계의 논쟁은 다를 것이라 기대했습니..

책이야기 202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