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11

여름은 너의 몫이라고

여름은 너의 몫이라고 수정 2025.06.19 21:01 최정화 소설가 그는 나를 알토라고 부르지만, 내 이름은 벅이다. 태어난 지 다섯 달쯤 지났을 때 나를 입양한 보호자가 지어준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그는 조그만 내가 귀엽다며 집으로 데려갔지만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길에 버렸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데 길들여진 고양이가 길 위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춥다는 사실을 세 살에 처음 알았고, 길에서 태어난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적응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나는 사시사철 감기에 걸려 있고, 털은 뭉쳐 있고, 귀에는 진드기가 가득하며, 뱃속에는 작은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들어 있다. 내게는 이빨이 없다. 구내염에 걸린 탓에 이를 모두 뽑..

책이야기 2025.06.24

“인간이 잠을 자듯이 종이책이 꼭 필요하죠”

“인간이 잠을 자듯이 종이책이 꼭 필요하죠”대만 출판그룹 다콰이문화 하오밍이 대표 인터뷰 부산 화교 출신으로 타이베이도서전 이사장도 겸임 서울도서전 참여하고 한국어로 쓴 ‘찬란한 불편’도 출간 “출판 위기 시대, 독자 취향 잘 맞추는 작은 출판사 유리”구둘래기자 수정 2025-06-17 19:32등록 2025-06-17 17:47 “올게(올해) 대만 출판인이 300명이나 오거든요.” 대만(타이완)에서 5일 서울에 도착한 하오밍이(69·郝明義) 출판그룹 다콰이문화(大塊文化·로커스) 대표는 부산 사투리가 역력하다. 부산 화교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마치고 국립대만대학교로 유학 간 이후 대만에 정착했다. 매해 6월이면 베이징도서전이 열리지만, 그는 언제나 서울국제도서전행을 선택했다. 올해는 그에..

책이야기 2025.06.17

소설 클럽

소설 클럽 수정 2025.06.11 21:01 임의진 시인 인생이 통째 어그러져 산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 명산에 구경 가자, 가서 맛난 거 묵고 오자’ 꼬드김. 등산을 목적으로 만든 모임이 있다. 요상한 산악회 같은 건 아니고. 하나둘 뼈마디가 눌리고 쑤셔대서 이젠 해체 국면이야. 현주소지가 지목이 산으로 되어 있다. 멧산 말이야. 멧돼지도 살고 멧비둘기도 살아. 애당초 산에 사는데, 어디 다른 산엘 굳이 가고프겠는가. 결국 끌려가면 배낭에 기필코 시집이라도 넣어 간다. 초면이라도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 “요즘 무슨 책 읽어요?” 대충 둘러대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 내 인연들은 우수한 편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라면 꼭 구입해서 정독한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 지중해에 가면..

책이야기 2025.06.15

한창훈의 ‘지금, 이 문장’ [.txt]

한창훈의 ‘지금, 이 문장’ [.txt]수정 2025-05-23 13:05 등록 2025-05-23 13:00 1975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된 박상륭 선생의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 두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읽어내기가 말 그대로 용이치 않았기 때문. 보기도 전에 두께에 이미 질렸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이 소설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동녘 운산, 북녘 눈뫼, 서녘 비골 대신 갈증이 계속되는,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 모인다”는 첫 문장에 정신이 휘청거렸고 뒤에 나오는 이 문장에서는 완전히 영혼이 털려버렸다. 3인실에 있었고 내 옆 환자가 말기 암 노인이었는데, 툭하면 아들과 딸..

책이야기 2025.06.08

'문단에 등단을 했다' 이 말의 의미

20.09.15 17:12ㅣ최종 업데이트 20.09.15 17:20'문단에 등단을 했다' 이 말의 의미[시인에 대해 궁금하세요?] 문학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주영헌(yhjoo) 문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비슷한 질문으로 '어디에 소속되어 있나요'라는 말도 가끔 듣게 되죠. 소속에 관련한 질문도 문단과 비슷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런 질문에 저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등단=문단=시인'이라는 공식이 깨어져 버리니까요. '시인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는가?'는 질문도 받습니다. 이 질문은 등단이라는 것이 자격증처럼 이름이 쓰여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등단'이라는 의미 먼저 등단이라는 제도를 알아보겠습니다. ..

책이야기 2025.06.06

긁혔네, 그래서 말인데

긁혔네, 그래서 말인데 수정 2025.06.01 20:47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요즘 젊은 세대들은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나 좀 긁혔어’나 ‘긁?’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쓴다. 마치 물리적으로 긁힌 듯 들리지만, 사실 이는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삐지거나 불쾌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단순히 신조어의 등장이라고 보기 쉽지만, 어쩌면 우리는 ‘긁다’라는 단어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살펴보면 ‘긁다’에는 ‘남의 감정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자극하다’라는 뜻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다’라는 관용구처럼, 이는 단순히 피부를 긁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결국 ‘긁히다’가 ‘삐지다’ ‘상처받다’처럼 쓰이는 것은 완전히 새..

책이야기 2025.06.02

세계 최고의 책벌레 나라 아이슬란드

세계최고의 책벌레 나라 아이슬란드.. 재밌는 이모저모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대우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이슬란드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뱃속에 자신만의 책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을만큼 아이슬란드는 인구 대비 저술가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인구 약 32만명 중 1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10%나 된다. 저자가 많은만큼 출판업, 서점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독서 토론프로그램이 TV 황금시간대에 편성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인기선물로는 언제나 책이 1위를 차지한다. 크리스마스를 약 2달정도 앞둔 이맘때쯤에는 전국 서점마다 신간 서적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곤 한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책사랑은 국제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

책이야기 2025.06.01

‘책 읽는 나라’ 위한 ‘진짜 공약’은 왜 없나 [.txt]

‘책 읽는 나라’ 위한 ‘진짜 공약’은 왜 없나 [.txt]백원근의 출판 풍향계수정 2025-05-30 09:40 등록 2025-05-30 05:00 여성가족부의 ‘2024년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매체는 쇼트폼(짧은 영상)이 94.2%로 가장 높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제외한 종이책 이용률은 69.0%, 웹툰 59.3%, 인터넷 잡지와 전자책은 25.4%였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이미 책을 읽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시키니 대부분 책을 읽을 것이라는 통념과 다르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보고서’에서도 13살 이상 국민의 연간 독서율은 2013년 62.4%에서 2023년 48.5%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스마트폰의 보급 ..

책이야기 2025.06.01

이 책방에 세면대가 두대인 이유 [.txt]

이 책방에 세면대가 두대인 이유 [.txt]우리 책방은요수정 2025-05-23 14:30 등록 2025-05-23 14:00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큰새’. “손이라도 닦고 가세요”라고 적힌 철제 선간판이 눈길을 끈다. 책방지기 제공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북적거리는 중심가를 조금 지나면 입구부터 유쾌한 기운을 머금은 서점 하나가 있다. “손이라도 닦고 가세요.” 이렇게 적힌 철제 선간판이 행인들을 향해 손짓하는 듯하다. 책방 이름은 ‘큰새’. 25평 규모 아담한 책방이지만 이름만큼은 ‘큰새’다. 우리 책방은 대형 서점과는 조금 다르다. 빼곡한 신간 코너, 시끌벅적한 베스트셀러 랭킹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대신 서가에 비치한 책들마다 손 글씨로 써 내려간 문장이 붙어 있..

책이야기 2025.05.25

부글부글·풍덩…감정에 색깔 입히는 의성의태어 [.txt]

부글부글·풍덩…감정에 색깔 입히는 의성의태어 [.txt]신견식의 세계 마음 사전 추상적 감정 구체화하는 의성의태어 한국·아시아·아프리카어에 많아 복잡한 감정의 결 살려 생동감 더해 수정 2025-05-24 17:51등록 2025-05-24 02:00 ‘부글부글’은 원래 액체가 계속 야단스럽게 끓어오르는 소리나 모양을 일컫는데 울화나 분노, 언짢은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모양도 빗댄다. 게티이미지뱅크 언어 기호의 자의성은 언어학자 소쉬르가 주창한 이래로 널리 알려진 언어학의 기본 개념이다. 예컨대 한국어 ‘나무’, 중국어 ‘木’, 영어 ‘tree’의 말소리는 이것이 일컫는 말뜻과 아무 상관이 없다. 추상명사로 가면 그 정도는 더한데 ‘사랑’, ‘愛’, ‘love’가 왜 하필 그 뜻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책이야기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