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01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요?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요?입력 : 2025.01.20 21:18 수정 : 2025.01.20. 21:21 심완선 SF평론가  최근 본 기묘한 표기는 “펑 퍼짐함”이었다. ‘펑’과 ‘퍼짐’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으므로 둘은 별개의 단어다. 대강 조합하면 ‘펑 소리가 나며 퍼지는 일’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맥락상 그럴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펑퍼짐한 정도’라는 의미로 쓰인 표현이었다. 현대사회, 특히 온라인 공간에 파도처럼 몰아치는 무수한 텍스트 대부분은 한글 맞춤법 규정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읽는 쪽에서도 맞춤법보다 맥락과 의도를 중시한다. 그러니 표기된 대로 읽으려 하면 오히려 말뜻을 놓친다. 다시 말해, 정확하게 읽으면 틀린다. 한글 맞춤법의 띄어쓰기는 꽤 어렵다. 가령 ‘할 수 있다’는 원칙적..

책이야기 2025.01.22

소설의 힘과 가치

[다시 소설이다]소설의 힘과 가치 허희(문학평론가) 2025. 1+2.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들 2024년 2학기, 내가 어느 대학교에서 맡았던 강의는 〈소설창작연습〉이었다. 소설가가 아닌 평론가가 소설 창작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길 사람이 많으리라. 사실은 나도 그랬다. 하지만 소설 창작이란 자고로 타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는 데에서 시작하며, 습작에 대한 생산적인 비평과 피드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가르치지 못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의 계획서의 교과목 목표는 “소설의 힘과 가치를 이해한다.”로 정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소설의 범주를 문학으로 넓혀 생각하면 먼저 이런 주장이 떠오른다. 문학은 배고픈 누구 하나 구하지 못할 만큼 실질적인 쓸모가 없..

책이야기 2025.01.21

붓끝에 따라오는 불과 꽃

붓끝에 따라오는 불과 꽃입력 : 2025.01.15 20:50 수정 : 2025.01.15. 20:58 성현아 문학평론가  1933년 5월, 베를린 광장에서는 반(反)나치적인 도서로 분류된 책들이 불태워진다. 프란츠 카프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의 저서도 이때 태워진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미하 울만이 설치한 조형물 ‘도서관’의 안내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의 문장이 쓰여 있다. “그것은 다만 서곡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태울 것이다.” 실로 분서가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진행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서적을 대상으로 한 탄압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일어난다. 당시 책 파기에 동원되었던 한 교사는 당국에서 봉건적, 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한 책들을 ..

책이야기 2025.01.16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집의 묘미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집의 묘미 글_김해리(문화기획자)   『앤티크 수집 미학』, 박영택 저, 마음산책, 2019  나에게는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최근에는 우리의 옛 물건에 푹 빠져 있다. 주변에서 ‘너는 왜 그렇게 오래된 것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명쾌하게 답하기 어려웠는데 『앤티크 수집 미학』에서 ‘인간의 손길이나 시간의 자취, 사라져 버린 흔적이 머문 자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이 된다’라는 문장을 보고 ‘맞아, 이거야!’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된 물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라는 점이다. 내가 몰랐던 역사에 관한 이야기든, 비밀스러운 이야기든 물건 하나를 놓고 끊임없이 상상하고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옛 ..

책이야기 2025.01.15

세상이라는 종이에 맘껏 얼룩을 남기려는 자 [.txt]

세상이라는 종이에 맘껏 얼룩을 남기려는 자 [.txt]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수정 2025-01-11 09:09 등록 2025-01-11 07:00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l 이반지하, 창비(2024)  내 방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오랜 시간 거실에서 생활했다. 식구들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에 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누구도 시키지 않은 모종의 책임감이 습관처럼 배었다. 지붕 아래 모두를 챙겨야 한다는 강박. 꼭 거실 찬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던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과 닮았다. 할머니 집에는 큰 마루와 작은 방이 세 개 있었는데, 할머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교차로 같은 방에서 이불을 깔고 생활했다. 잠귀가 밝은 할머니는 바깥의 인기척을 느끼면 바로 몸을 일으켜 밥은 먹었느냐 물었다. 자신만의 공..

책이야기 2025.01.11

북집게, 끈갈피, 타이머, 기화펜…책에 더욱 손이 간다, 손이 가 [ESC]

북집게, 끈갈피, 타이머, 기화펜…책에 더욱 손이 간다, 손이 가 [ESC]커버스토리 ‘독서템’ 쓰는 사람들  다른 색·크기 인덱스 붙이고, 트래커에 생각 기록하며 ‘독서력 업’ 효과적인 독서 돕는 ‘독서템’…“독서템 만지고 싶어” 책 더 가까이 “MZ세대, 독서도 재미·개성있게”…독서 앱·전자책도 ‘도움 꿀템’수정 2024-11-16 07:00 등록 2024-11-15 07:37  서른살 성시우(필명)씨는 읽고, 쓰는 사람이다. 문학을 전공한 대학 시절부터 책에 죽고 책에 살았다. 출근 직전에도 타이머를 맞추고 책을 읽는 그의 직업은 편집기자다. 유튜브 채널 ‘댓시옷’ 을 운영하는 10개월 차 ‘북튜버’이기도 하다. 지난 3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성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집 벽면에는 천장 바로 아래..

책이야기 2025.01.07

‘2025년 그림책의 해’ 그림책 문화의 현재와 미래

‘2025년 그림책의 해’ 그림책 문화의 현재와 미래특집  2022년과 2023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내맘쏙 : 모두의 그림책 전’과 ‘백희나 그림책전’은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2024년 여름에 순천그림책도서관에서는 ‘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전’이 절찬리에 진행됐다.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은 시민 활동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내년에 4회를 맞는다. 그림책을 사랑하며 자녀를 키우고 성장해 온 사람들은 전주를 그림책의 도시로 키워내는 중이다. 전주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원주는 그림책을 일상예술로 만드는 예술 향유자 시민들의 성장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으며 순천은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전문가들이 찾아오는 알찬 기획전을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 ..

책이야기 2025.01.05

혼신의 글쓰기, ‘김윤식 전시회’에서

혼신의 글쓰기, ‘김윤식 전시회’에서입력 : 2025.01.02 21:23 수정 : 2025.01.02. 21:29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밋밋하게 끝나지 않고 뿔처럼 하루가 더 있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12월 31일. 복면한 괴한인 듯 아라비아 숫자 즐비한 달력에서 지난 1년을 휘감으며 등대처럼 밝힌다. 그냥 하루, 여느 날처럼 지나치기엔 내 간이 너무 작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건 비장한 일이다. 기괴하고 희한한 일들이 마구마구 범람해서 정신을 모으기가 몹시 힘들다. 해가 뜨고 다시 달이 뒤쫓아 오기까지,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보자기에서 이 마지막 날은 목석같은 나에게도 좀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무엇으로 다시 못 볼 갑진년을 마무리할까. 참..

책이야기 2025.01.03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공자와 논어를 넘어... 재독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4.12.26 17:37l최종 업데이트 24.12.27 09:00l 노태헌(rth922)  연말이다. 크리스마스까지 지나갔다. 사람은 늘 생각을 하며 살아가기에 또다시 한해를 되돌아본다. 한해를 무턱대고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좋았던 기억들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아 보인다. 한 해 동안 목표로 하였으나 이루어 내지 못한 것들도 떠올린다. 이런저런 상념과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는 걷기나 책의 도움을 받아 본다. 그러한 행위들 속에서 또 다른 상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샛길은 처음에 밀려왔던 부정적인 감각에서 조금 벗어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을 먹고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뽑아 든..

책이야기 2025.01.02

‘살았다’는 문장 다음

‘살았다’는 문장 다음입력 : 2025.01.01 20:57 수정 : 2025.01.01. 21:01 인아영 문학평론가  잊고 있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계엄령이 내려지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착륙하려던 여객기의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2024년 말은 참으로 잔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은 세월호 10주기이기도 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억해야만 하는 일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 기억을 위한 에세이에서 김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을 살았다./ 살았다고 끝나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죽었다고 끝난 문장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 기억..

책이야기 20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