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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할 거야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닭털주 2025. 3. 10. 10:25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할 거야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수정 2025-03-09 21:47 등록 2025-03-09 18:48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너 있으나 나 없고 너 없어 나도 없던/ 시작되지 않은 허구한 이야기들/ 허구에 찬 불구의 그 많은 엔딩들은/ 어느 생에서야 다 완성되는 걸까

(정끝별, ‘끝없는 이야기’).

이 시를 쓸 때 나는,

어긋나 시작되지도 못했던,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가 되지 못했던,

허구한 허구의 이야기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영화 더 폴(The Fall)’을 보면서 오늘이라는 매일매일이,

내가 너와 함께 써 내려 가는 환상적인 모험이자 위대한 이야기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좋은 이야기의 힘이 바로 나와 너를 구원해 주기도 하는 문학,

특히 시의 수행적 역능이라는 것도.

영화는 장엄한 미학적 영상에 담아낸 판타지라는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 속살은 떨어진사람들의 현실과 내면을 그린,

구하러 올 사람이 없을 때, 뛰어든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리얼리즘적 대서사시.

 

로이는 배우를 꿈꾸는 스턴트맨이다.

몸을 던져 뛰어오르고 떨어지는 것, 그게 그의 일이자 꿈이다. 영화 촬영 중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다 진짜 떨어진다. 하반신이 마비된 채 배우의 꿈과 직장과 애인을 잃고, 급기야 미래라는 희망을 잃고 병원 침대에서 하루하루 더 떨어진다.

알렉산드리아는 인도 출신 이민 2세대쯤의 다섯살 소녀다.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왼팔을 깁스한 채 고향을 잃고 무법자들에게 아버지와 집을 잃고 가족들과 떨어져 갑갑한 병실에서 떨어지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편지가 로이에게 잘못 떨어지면서 두 사람이 만난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듣고 로이가 알렉산더 대왕도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다녔지라고 툭 던지자,

호기심 천국 알렉산드리아가 편지를 찾았어요?”라며 덥석 문다.

우연한 운명처럼 영화 속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죽음으로 인도할 모르핀을 얻기 위해 로이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야기는 욕망과 의지의 소산이다.

 

영화 속 무성영화, 영화 속 현실, 영화 속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구현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상상이 겹치고 겹친다.

중층의 이야기들로 짜인 이 영화는 한마디로 떨어진사람들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병원이란 원래 떨어진 사람들의 집합소다. 로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속 다섯 무법자도 각자 다른 이유로 떨어져 복수를 꿈꾸는데, 알렉산드리아가 상상으로 구현하는 이야기 속 무법자들이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로 그려지는 이유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은 공감의 연대로,

천진한 사랑으로,

유머를 잃지 않은 희망으로, 떨어진 서로를 구원한다.

떨어진 후 절망의 미궁에 빠져 자살만을 꿈꾸는 로이의 영혼을 알렉산드리아가 구원한다.

로이로 하여금 실패와 절망과 슬픔을 이야기하게 하고,

진심으로 로이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개입하고 출연해 이야기를 바꿔준다.

로이가 다시 세상에 설 수 있도록!

빵인 줄 알고 성체를 건네주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내 영혼을 구하려는 거야?”라고 했던 로이의 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로이도 알렉산드리아를 구원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를 계속 듣고 또 만들고 싶어서져 안 낫고 싶어요, 아저씨랑 있게요라고 했던 이유다. 이야기는 구원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의 깁스한 왼팔을, 누워 있는 로이의 오른편에 기대놓고,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장면의 꽉 찬 구도와 각도와 조도는 내가 꿈꾸는 사랑의 자세였다.

사랑이란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가 그러했듯,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서로의 이야기를 바꾸고 서로를 구원하는 것,

내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는 사랑이다.

 

이야기는 울음의 형식이기도 하다.

무법자들이 바다에 갇힌 섬에서 탈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허리 높이의 수영장에서 익사 직전에 일어나 복수를 완성하며 끝날 때도, 물은 절망과 슬픔을 상징한다. 로이가 내 이야기엔 해피엔딩이 없어라며 이야기 속 인물들을 다 죽이면서 울 때도, “내 얘기이기도 해요그러니 제발 죽이지 말아요라며 알렉산드리아가 함께 울 때도, 그 울음은 두려움과 슬픔을 밖으로 흘려 내보내는 정화와 성장의 눈물이었다.

 

모든 이야기는 자신이 숨 쉬고 싶고, 살고 싶어서 만들어낸다.

자신의 심연에 갇힌 상처받은 영혼을 풀어 내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떨어진 내 이야기에서 나를 대신해 누군가 내 희망을 발견해 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떨어진 이야기에서 내가 대신 희망을 발견해 주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늘 현실과 한몸이다,

문학처럼.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 때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천일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셰에라자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