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AI가 도달할 문학적 글쓰기 [크리틱]

닭털주 2025. 3. 9. 09:48

AI가 도달할 문학적 글쓰기 [크리틱]

수정 2025-03-05 18:49 등록 2025-03-05 17:01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문학적 글쓰기를 시작하던 20대 청춘 시절부터 늘 글의 내용 못지않게 문체에 관심이 가곤 했다. 곰곰이 생각건대 나를 문학에 빠지게 만든 중요한 동기는 문체의 힘과 아름다움이지 싶다. 가령 세계가, 내가 없어도 내가 있을 때와 똑같이 활기를 띠고 진행되리라는 것을 느낄 때의 허무감같은 문장을 통해 비평가 김현 특유의 문체가 지닌 고유한 개성을 느꼈다.

나는 언제나 이국(異國)의 어느 도시에 아무 가진 것 없이 홀로 도착하는 것을 꿈꾸었다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을 번역한 김화영의 단정한 문장이 지닌 상큼한 매력도 내 청춘을 통과한 원체험이다.

이런 문장과의 만남이 나를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이끌었으리라.

문체는 단지 수사학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 저자의 사유와 미적 자의식이 반영된 심연과 같은 성좌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글쓰기는 예술적 문체의 강렬한 개성을 대체할 수 있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물음에 대해 유보적이었다.

실용 번역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을 수행하더라도, 깊은 사유의 힘에서 나오는 정연하고 아름다운 문체의 독창성까지 에이아이가 온전히 감당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봤다.

하지만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에이아이 기술은 문체의 고유한 매력과 특징까지도 충분히 넘보는 상태다.

당연한 사실이다. 온갖 문체의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에이아이를 활용한 글쓰기 문체도 진화할 테다.

 

이런 변화를 마주하며 영화 시라노’(1990)에 등장하는 주인공 시라노의 마지막 독백을 떠올렸다.

월계관도 장미꽃도 다 가져가라. 그러나 한가지만은 내게서 절대로 빼앗아 갈 수 없다. 나의 허영심만은.”

이 문장을 이렇게 변주하면 어떨까.

인공지능이여! 광범위한 정보도, 지식의 조합과 요약도, 신속한 번역도 다 가져가라. 그러나 한가지만은 글쓰기에서 절대로 빼앗아 갈 수 없다.

문체의 고유한 개성과 매력만은.” 하지만 에이아이 발전 속도에 따라 조만간 이런 절박한 외침조차 과거의 유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오미 배런은 최근 번역된 쓰기의 미래에서 에이아이 글쓰기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에이아이가 긴 텍스트를 생성하더라도 반복성 표현을 남발하지 않고, 문체는 매력적이며, 사실관계가 정확하고, 늘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 그리고 당신이 작성한 것과 구분이 불가능한 글을 생성할 수 있다고 적었다.

과연 그러하다. 에이아이 프로그램 라이너에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김애란 소설 성탄특선에 대한 감상을 아름다운 에세이 풍으로 장문의 분량으로 써줘. 무엇보다 문장이 정확하고 아름다워야 해. 아울러 남녀 주인공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포함되어야 해.”

결과를 보니 비문이 거의 없는 준수한 문장이 생성됐다.

심지어 아름다운 문장도 꽤 있었다.

 

최근 에이아이를 활용한 번역과 글쓰기는 한층 그 성능이 향상됐다.

엄기호는 에이아이를 통한 글쓰기가 자기만의 표현, 문체를 잃어갈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에이아이가 김현 비평가, 한강 작가, 김혜순 시인의 문체를 변주해 글을 쓰는 세상은 글쓰기 스킬의 진보일까, 퇴락일까?

끝끝내 인공지능이 도달하지 못하는 문학적 글쓰기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일까?

과연 그런 영역이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제 문학적 글쓰기 역시 위의 질문들을 마주하며 창의적 문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무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