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39

눈 뜨기 연습

눈 뜨기 연습입력 : 2025.03.30 20:48 수정 : 2025.03.30. 20:50 복길 자유기고가  집 앞 하천에 물이 마르면 괜히 눈이 삐뚤어졌다. 냇물을 제집 수도처럼 쓰는 골프장과 저수지 근처의 도축장 공사판을 종일 탓하느라 그랬다. 야속할 만큼 오지 않던 비는 내 눈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쯤 소리 없이 내렸고, 하천에 물이 차면 모난 마음이 조금씩 깎였다. 산천이 대수냐, 저 미운 골프장 방문객들이 마을을 먹이고 살린다. 쌀밥을 한술 떠 제육 반찬을 올리고 둥글어진 속에 넣었다. 마음에서 깎여 나간 모서리가 목구멍에 가시처럼 박혔어도 밥알을 뭉쳐 삼키면 그만이었다. 개천 음쓰·축사 오물…그늘진 풍경 계획에 없던 귀농이었지만 안개가 끼면 함께 쉬고, 가문 날엔 함께 우는 이웃의 존재는 이곳..

칼럼읽다 2025.03.31

양산에서 노을을 보다

양산에 온 지 10일째.양산으로 이사 온 지는 9일째.하루 전날 왔고 다음날 이사짐을 내렸다. 2025년 3월 21일이다.3월은 가장 바쁜 날이다.이사를 하면 프리랜서도 바쁘다. 책장 정리를 하다보니 노을을 볼 겨를이 없었다.이제 서재도 일단 자리를 잡았다.토요일 소주 한 잔 아니 소주 몇 병을 마시기 위해 집을 나섰다. 육교를 건너면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로 가서 고기와 술을 산다.저녁 6시 30분 육교를 지나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다.찔끔내린 비, 다음 날이다.

사진놀이 2025.03.30

슬기로운 자기 생각 검증

슬기로운 자기 생각 검증입력 : 2025.03.25 21:09 수정 : 2025.03.25. 21:13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내 생각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를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오랜 옛날부터 던져졌다. 가령 공자는 말과 행실의 일치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사람이 늘 말한 대로 행한다면 그 사람의 생각에는 거짓이 없다고 믿었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기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미더운데 생각이 미덥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긴 결과다. 제자백가의 하나인 묵자는 한결 구체적으로 판단의 근거를 제시했다. 모두 세 가지다. “첫째, 성현들의 사적과 부합하는가? 둘째, 사람들 다수가 그렇다고 여기는가? 셋째, 국가와 사회에 쓸모가 있는가?” 첫째는 자신의 생각을 사회적으로 공인된 지혜로운 ..

칼럼읽다 2025.03.30

봄날의 봄볕

봄날의 봄볕입력 : 2025.03.26 21:00 수정 : 2025.03.26. 21:14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내가 사는 수원에는 ‘인문 공동체 책고집’이 있다. 책고집 대표 최준영 선생님은, 노력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석진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인문학의 가치를 알리려 꾸준히 고집스럽게 애써온 이다. 올해 책고집은 ‘인문학 강좌, 곁과 볕’을 전국 곳곳에서 진행한다. 얼마 전 강사로 참여하는 분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글과 삶의 모습을 보며 늘 존경하던 한 분이 ‘곁과 볕’이 ‘곁과 빛’이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 않으려 했다며 좌중을 웃게 만들고는, 곧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볕이라는 의미 있는 얘기를 이어갔다. 봄이 오고 있다. ..

칼럼읽다 2025.03.29

소멸하는 우리 문화의 거리

소멸하는 우리 문화의 거리입력 : 2025.03.26 21:01 수정 : 2025.03.26. 21:17 박영택 미술평론가  얼마 전 대구에 다녀왔다. 기차 좌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최근 출간된 김영복 선생의 옛것에 혹하다>라는 책이다. 선생은 고서적과 서화에 대한 감식안이 빼어난 분이다. 오랫동안 인사동 현장에서 실물을 접하면서 감정과 상인의 일을 병행해온 경험의 시간 또한 유장하다. 별명이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그러나 이제 인사동은 좋은 고미술품 가게나 전시장이 많이 사라지고 뛰어난 안목의 상인들도, 대단한 소장가들도 소멸해 가는지라 더없이 삭막하고 쓸쓸해졌다. 골목에 숨은 듯이 자리한 몇개의 고미술 가게들은 적요한 풍경을 배경으로 주저앉아 있다. 그 허망해진 거리에 음식점, 화장품과 옷 가게, ..

칼럼읽다 2025.03.28

좋아서 하는 마음

좋아서 하는 마음입력 : 2025.03.19 21:24 수정 : 2025.03.19. 21:31 성현아 문학평론가  봄의 기운을 담뿍 머금은 3월이 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문학을 가르치는 나는 어김없이 칠판에 의자 하나를 그린다.잘 그리지 못해서 가끔 변기같이 보이기도 하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의자’라고 부릅니다. ‘의자’라는 말과 실제 의자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학생들은 일제히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언어와 의미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해요. 혹은 그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뜻에서 언어의 우연성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겠지요.”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문학 이야기를 한다. “문학은 언어로 하는 예술..

책이야기 2025.03.27

일주일 만에 블로그 아니 티스토리에 들어가다

일주일만인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컴퓨터를 어제 켰지만, 글은 올리지 않았다. 여유가 없어서다. 밀린 일기를 일부 쓰다가 피곤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칼럼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노트북을 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그러나 오늘은 책정리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서 칼럼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일 시작된 이사는 오늘로 8일째다.나에게 이사는 책과의 씨름이다. 책과의 애정다툼이다. 책속에서 눈물 흘리기다. 그게 말이지, 감동으로 나에게 찾아온다는 것을......치약, 칫솔 등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에코백 속에서 잠자는 지도 모른다.옷들도 사라졌다. 책을 펼치고 정리하면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그러니 일주일 동안 컴퓨터를 켜지 못했다. 좁은 집이니 책을 정리하면서 공간이 생긴다. 그곳으로 찾아간..

하루하루 2025.03.27

로그아웃 할 용기

로그아웃 할 용기입력 : 2025.03.17 20:40 수정 : 2025.03.17. 20:47 노정연 매거진L팀 차장  ‘딸깍’. 새끼손톱만 한 유심이 슬롯에 장착돼 이제 막 포장을 뜯은 새 휴대폰 안으로 이식됐다. 목적지는 하와이. 2주간의 장기 휴가를 앞두고 이제 겨우 짐싸기를 마친 새벽 3시였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급하게 휴대폰을 교체한 이유는 10년 가까이 써온 이전 휴대폰이 사진 한 장 찍을 여유 공간 없이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와이 풍경을 마음껏 찍을 새 휴대폰도 생겼겠다, 위풍당당하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비행모드를 켰다. 앞으로 닥칠 혼란을 모른 채 말이다. 하와이에 도착해 휴대폰을 살펴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 전원을 켜기가 무섭게 울려대던 알림창..

칼럼읽다 2025.03.19

아이들을 실험용 쥐로 만드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

아이들을 실험용 쥐로 만드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입력 : 2025.03.13 21:01 수정 : 2025.03.13. 21:06 손제민 사회에디터  3월 한 초등학교 교실. 교사는 각자 지급된 태블릿 PC로 학생들에게 영어 학습을 시켰다. 아이들은 각자 아는 만큼 자기 속도에 맞게 답을 누르고 기기가 알려주는 점수에 기뻐하거나 실망했다. 한 아이는 스마트폰 게임하듯 수업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음 수업은 자신의 수준에 맞게 난이도가 조절된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 학급의 풍경이다. 올해 초중고등학교 일부 학년에 AI 디지털교과서가 처음 도입됐다. AI교과서는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기기에 옮겨놓은 기존 ‘디지털교과서’에 생성형 AI를 탑재한 것이다. 교육부는 ..

칼럼읽다 2025.03.18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입력 : 2025.03.13 20:56 수정 : 2025.03.13. 20:58 이훤 작가  도착 중인 편지 I, Ⅱ. ⓒ이훤  차를 타고 3월로 이동 중이다, 사월아. 나는 느리니까 사흘 일찍 출발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보다 더 늦게 넌 이 편지를 읽게 된다. 느린 자들은 가장 먼저 움직이는 자들이기도 하다. 어디로 움직이고 있니. 어제 나는 노래를 몇 곡 부르고 빨래하고 버섯을 씻고 말렸다. 고상하고 천박하게>가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요즘 시대의 책이란 게 그렇잖아. 너무 빨리 낡잖아. 몇 해 동안 쓴 원고가 출간 몇 주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울어진 세숫대야에 담긴 시간처럼 금세 잃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인쇄가 들어갈 즈음 알게 됐다. 앞..

칼럼읽다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