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31

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

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력 : 2025.02.26 20:55 수정 : 2025.02.26. 21:00 박영택 미술평론가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학생들과의 수업은 힘들다. 그들은 두꺼운 종이책 자체를 꺼린다.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요약·정리하는 PPT로 진행되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학생들의 발표도 PPT로 이루어진다. 대개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정보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정보를 복사해서 짜깁기로 이룬 것들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책의 갈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유를 톺아보는 게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들을 그대로 옮겨와 읽어대는 학생들의 발표를 듣는 일은 곤혹스럽다. 힘겨운 독서와 고단한 사유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의 과제는 마냥 건조..

책이야기 2025.02.28

잔소리는 컬링처럼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잔소리는 컬링처럼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수정 2025-02-26 19:27 등록 2025-02-26 19:17 이명석 | 문화비평가  “내가 단 걸 뭘 먹었다고?” 세금이 뭔가 해준다면 꼭 해보는 친구가 보건소에서 대사증후군 검진을 받고선 씩씩댔다. 지난번에 비해 수치가 안 좋아졌다고, 최근에 뭘 먹었냐고 물어보더란다. “감기 기운이 있어 생강차와 과일차를 계속 마셨다니까, 그게 원인일 수 있다고 그러시네.” 담당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노골적인 잔소리 대신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며 에둘러 말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참지 못했다. “너 황도도 캔째로 마시잖아.” 어색한 침묵 뒤의 역공. “너도 검사받아 봐!” 그렇게 나는 이틀 동안 빵과 튀김을 끊은 뒤 보건소로 가게 되었다. 먼저 온 부부가 검진을..

칼럼읽다 2025.02.27

고대웃음꽃작은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마무리하고

고대웃음꽃작은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마무리하고  오랫동안 글쓰기 수업을 해왔다. 10년 아니 20년 넘었다. 청소년 대상으로는 시와 수필 상관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쓴 시 산문집 때문인지, 주로 시쓰기가 많았다. 성인 대상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힐링 글쓰기’다.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고대웃음꽃작은도서관에서다.  이번 수업은 조금 특별했다. 수업 전날 이야기다. 아침부터 소동이 있었다. 웃음꽃작은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한 명이 수강을 취소했단다. 그러면 3명. 자신은 출석부를 작성해야 하는데, 1명이 추가 안되면 출석부를 만들지 않겠다고. 난감했다. 1주일전 두 군데 모두 수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겨우 과반수를 넘겼다. 그런데. 그래서 전화를 드렸다. 원래 신청하기로 한 분이다. 아침을 방금..

하루하루 2025.02.27

발견하는 글쓰기

발견하는 글쓰기입력 : 2025.02.26 20:58 수정 : 2025.02.26. 21:08 오은 시인  얼마 전부터 글쓰기 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강의 제목은 ‘발견하는 글쓰기’다. 학교나 기관에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연속 강의는 잘 수락하지 않는데 용기를 냈다. 글쓰기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하고 커다란 용기로 마무리되니까. 내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글쓰기가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 쓸 사람들과 함께 초심도 살피고 싶었다. 글쓰기에 입문할 적에 나는 글을 통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글을 쓰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는 사실을 안다. 작은 용기가 커다란 용기가 되듯, 작은 질문이 커다란 질문으로 변모하는 것이..

책이야기 2025.02.27

이 섬에서 일 년만 살자 [서울 말고]

이 섬에서 일 년만 살자 [서울 말고]수정 2025-02-23 18:56 등록 2025-02-23 16:04  먼 바다를 지키는 빨간 등대가 아름다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바닷가. 사진 백창화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대설주의보에 강풍 특보가 내려진 제주의 겨울은 춥고 을씨년스러운 데다 한없이 변덕스러웠다. 제주에서 눈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날려서 몰아치는 눈보라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인데 자동차로 5분만 달리면 금세 맑은 하늘이 나왔다. 눈인가 하면 비였고, 구름인가 하면 또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잠시 차에서 내려 길을 걸으면 사람이 떠밀려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 퍼부었고 이 바람에 두들겨 맞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비행기에선 수많은 사람이 내려 공항은 붐볐는데 모두 ..

칼럼읽다 2025.02.25

10만년 후를 본 백남준과 SF

10만년 후를 본 백남준과 SF입력 : 2025.02.24 21:00 수정 : 2025.02.24. 21:03 심완선 SF평론가  김연아 선수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듯 백남준이라는 이름 덕분에 비디오 아트를 알았다. 텔레비전 1003개를 탑처럼 쌓은 ‘다다익선’의 작가, 공연 중에 관객석의 존 케이지에게 가서 넥타이를 잘라버린 괴짜,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예술가. 그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오히려 백남준의 작업이 얼마나 비범하고 흥미로운지 실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 중 ‘자서전’은 백남준 자신이 수태된 해부터 시작한다. 각 해의 내용은 대개 한두 줄뿐이다. 그는 1932년에 출생했고, 1933년에 한 살이었고, 다음 해에는 두 살이었다. 그다음에는 세 ..

칼럼읽다 2025.02.25

의학은 사회과학이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다입력 : 2025.02.18 21:36 수정 : 2025.02.18. 21:38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윤석열 정부의 의료 정책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으로 상징되는 ‘대란’ 이미지가 전부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 시민들은 이 문제의 근본 성격을 잘 모르고 있다. “의료는 사회 문제”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사회가 ‘붕괴’된 것일까. 윤석열 정부의 정책으로 불과 1년 만에 의료 체계도 사회도 붕괴된 느낌이다. 의대 정원 논란은 이미 많은 이의 영혼과 몸을 파괴했지만, 이후 어떤 형태로 더 큰 후유증이 드러날지 겁이 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의 ‘2024년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최근 1년간 가족 간 ..

칼럼읽다 2025.02.24

사과를 아낄 이유 있나요 [똑똑! 한국사회]

사과를 아낄 이유 있나요 [똑똑! 한국사회]수정 2025-02-19 20:39 등록 2025-02-19 19:17  게티이미지뱅크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쨍그랑. 바닥으로 미역국과 그릇 조각이 한데 엉켜 흘러내린다. 뒤에 다른 사람이 대기하는 줄 모른 채 식당에서 국그릇을 들고 뒤돌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소하지만 사건은 벌어졌고 상황은 나빠졌는데 한마디 말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들을 주워 담으며 문득 요즘 사과나 감사를 듣기가 참 힘든 세상이 되었더랬지 싶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크건 작건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마주 걸어오는 사람과..

칼럼읽다 2025.02.23

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

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입력 : 2025.02.18 21:41 수정 : 2025.02.18. 21:45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사회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새 어휘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기존 어휘의 뜻이 분화 혹은 확대되기도 한다. 어느 날 급격하게 추락하는 운명을 맞는 어휘도 있다. 우리말은 아니지만 요사이 부쩍 많이 쓰이는 ‘레거시(legacy)’가 그런 예다. 원래 레거시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유산을 뜻한다. 고인은 가고 없지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듯이 도움을 주는 것이 유산이다. 점차 과거의 일이 현재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상징하는 말로 의미 영역을 넓혀 갔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레거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를 규정..

칼럼읽다 2025.02.22

‘레미제라블’의 식당 사장님 되기 [슬기로운 기자생활]

‘레미제라블’의 식당 사장님 되기 [슬기로운 기자생활]박지영기자수정 2025-02-20 19:16 등록 2025-02-20 19:10 박지영 | 산업팀 기자  요즘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넷플릭스에 업로드되길 기다리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 ‘요식업 멘토’로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진행하는 ‘백종원의 레미제라블’(ENA)이다. “100일간의 인생 역전 프로젝트”를 내건 이 프로그램은 “짧지만 강렬한” 인생사를 겪은 20명의 도전자가 ‘백종원표 스파르타식’ 미션을 수행하는 장사 서바이벌 예능이다. 처음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음식과 성장 스토리, 거기에 서바이벌 형식이 결합한, 그것도 메인 진행자가 ‘또’ 백종원 대표인 이 프로그램이 너무나 진부해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재밌는지 보자...

칼럼읽다 2025.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