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31

무슨 일 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입력 : 2025.02.19 21:16 수정 : 2025.02.19. 21:26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수없이 물었던 말이다. 그만큼 답해야 했던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말. 한국 사회에서 ‘하는 일’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소속과 지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니 물을 때였든 답할 때였든 그리 흔쾌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어이 묻고, 들어야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추진한 현대사 구술채록 사업 가운데 하나로,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거나 이에 관계된 일을 수행했던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2022년 갑작스럽게 청와대가 전면 개방됐다. 이후 청와대는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성역, 구중궁궐에 비유될 만큼 ..

칼럼읽다 2025.02.21

무심한 다정

무심한 다정입력 : 2025.02.19 21:19 수정 : 2025.02.19. 21:28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유행한 후, 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서운함을 덜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절친한 친구는 내가 “속상해서 염색했어”라고 말하면 “응, 잘했네”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그럴 때면 친구가 우울한 일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궁금해하지도 않을까, 하다못해 염색이 잘됐는지라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의아했다. 친구가 늘 나를 무성의하게 대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알아내어 적절한 위로를 건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친하게 지내왔는데 왜 매번 나만 최선을 다하는지, 반대로 ..

칼럼읽다 2025.02.20

습관에서 깨어나기

습관에서 깨어나기입력 : 2025.02.18 21:42 수정 : 2025.02.18. 21:47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깨끗해졌는데요?” 치과에서 들은 말이다. 매번 치아 사이 음식 찌꺼기가 남아서 잇몸 상태가 좋지 않아 혼이 났었다. 반년 전부터 고기나 질긴 채소를 먹고 나면 이 사이에 이물감을 확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치실을 꼬박꼬박 사용하게 됐고, 드디어 칭찬을 들은 것이다. 치아 사이 간격이 넓어지면서 생긴 불편감이 통각의 기준점을 넘어서버렸고 그 끝이 잇몸 상태의 호전이라는 아이러니. 오랫동안 해오던 치아 관리 습관을 바꾼 것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다.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습관의 힘이 더 강해서 한동안 대충 하다 말았다. 습관을 바꾼 계기는 통증이란 분명한 ..

칼럼읽다 2025.02.19

사적 인간의 공적 역할

사적 인간의 공적 역할입력 : 2025.02.12 20:16 수정 : 2025.02.12. 20:21 장동석 출판평론가  서울에서 일을 마치면 종종 광역버스를 타고 경기도 모처 집으로 향한다. 광화문이나 신촌이 회차 지점인 광역버스의 자리는 늘 넉넉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창가 좌석에 먼저 자리 잡고, 어떤 이들은 복도 좌석에 앉는다. 두어 정거장 지나 승차한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찾을 때, 복도 좌석 사람들은 창가로 들어가거나 상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일어난다. 하지만 아주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방 등을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여기도 내 자리인데 왜 비켜달라는 거야’라는 듯한 얼굴로 상대방을 쏘아보는 이가 없지 않다. 언젠가는 자는 척하며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공의 것..

칼럼읽다 2025.02.18

은행이라는 곳

은행이라는 곳입력 : 2025.02.12 21:19 수정 : 2025.02.12. 21:23 임의진 시인  은행은 보통 돈이 없는 사람들이 애용해. 진짜 돈 있는 사람에겐 은행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지. 늦가을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이 아니라, 돈을 빌리고 갚고 저축하는 은행들이 골목마다 몇 군데는 있어. 농협, 축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그리고 우체국도 은행 업무를 본다. 개인 경제 말고 나라 경제도 은행에 기대어 일을 보는데, 거기엔 은행원 말고 경제학자들이 들어앉아 ‘에헴’ 하고 있다. 경제학자가 오늘도 살아 숨을 쉬는 이유는, 일기예보하는 기상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라지. 혼자만 틀렸으면 아마 맞아 죽었을 듯. 1948년에 쓴 김용준의 근원수필>에 보면 ‘은행이라는 곳’이란 꼭지의 수필이 있..

칼럼읽다 2025.02.17

겨울, 잎을 떨구다

겨울, 잎을 떨구다입력 : 2025.02.12 21:16 수정 : 2025.02.12. 21:22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위험해 그 위로 가지 마!” 뭍으로 올라간 자식을 따라 물가까지 쫓아온 어미 물고기가 소리치는 모습을 그린 한 컷짜리 만화는 현재 육지에 사는 모든 네발 동물의 조상이 물고기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 물고기가 멀쩡한 물을 떠나 육지를 향했는지 그 이유를 여태 모른다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는다. 좀 심술궂게 따지면 이 만화의 작가가 사춘기를 지나는 말썽꾸러기 자식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질문을 틀어보자. 어미 물고기가 있던 곳은 민물일까, 바닷물일까? 잘 모른다. 미국 뉴욕대 의과대학의 생리학자 호머 스미스는 ..

칼럼읽다 2025.02.16

반대말 [말글살이]

반대말 [말글살이]수정 2025-02-13 19:02 등록 2025-02-13 14:30  클립아트코리아  멀리서 시인이 왔다. ‘반대말이 없는 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아예 반대말이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반대말이 없는 말이 훨씬 많다. 하지만 반대말로 묶인 낱말들이 서로 끈적하게 붙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말은 욕조에 머리와 발만 내밀고 있는 것처럼 가운데보다는 양극단에 이끌리는 인간 본성을 반영한다. 남자와 여자, 살다와 죽다, 아들과 딸, 오른쪽과 왼쪽, 크다와 작다, 춥다와 덥다. 두 낱말만 합하면 마치 전체를 아우르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와 여자를 합하면 사람 전체를, 살다와 죽다를 합하면 인생 전체를, 아들과 딸을 합하면 자식 전체를 말한다는 느낌! 둘로 쪼개니 기억하기도 쉽다. 다음..

연재칼럼 2025.02.15

햇볕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

햇볕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입력 : 2025.02.13 21:24 수정 : 2025.02.13. 21:29 김지연 사진작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구례의 한 정미소. ‘정미소’ 연작 중에서, 2002. ⓒ김지연  햇볕이 강한 날 그림자가 짙다는 것은 반대로 그림자가 강한 날 햇살이 좋다는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두 사람이 그림자를 포개며 ‘이러면 그림자 색이 더 짙어질까?’ 하며 그림자를 서로 겹쳐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볕이 흐린 날이라면 ‘그렇다’ ‘아니다’라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생각을 해보며 산책길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슬쩍 겹쳐보았다. 그림자 농도는 변함이 없었다. 한 사람의 슬픔에 다른 사람의 슬픔이 더하더라도 슬픔에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사진놀이 2025.02.14

‘고난의 행군’ 뚜벅뚜벅, 청소년 자치 학교 [세상읽기]

‘고난의 행군’ 뚜벅뚜벅, 청소년 자치 학교 [세상읽기]수정 2025-02-12 19:13 등록 2025-02-12 18:49  클립아트코리아  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현실에서 이런 학교가 가능할지 마음속으로 그려보자. 초등 5학년에서 고교 3학년 사이 아이들이 함께 배운다. 이들 대부분은 각자 다른 공교육 학교에 재학 중이다. 학생이 배움을 주도하고 ‘길잡이 교사’는 협력한다. 활동 시간대는 방과후, 주말, 방학 때다. 전체 참여 규모는 300명 안팎이다. 신기하게도 가능하다. 꿈(夢)이 이뤄지는(實) ‘몽실학교’. 2014년,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싹이 텄다. 의정부여중 김현주 선생의 헌신적 실천에서 비롯됐고, 여러 마을교육 실행가들이 협업하면서 지속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청소년 ..

칼럼읽다 2025.02.13

보석함을 열면 있는 것

보석함을 열면 있는 것입력 : 2025.02.11 20:55 수정 : 2025.02.11. 21:06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여름이 끝났음을 직감한 어느 날의 아침 나는 평소처럼 차를 마시다가 이번 여름을 보내며 수집했던 순간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순간들. 기껏해야 1초에서 3초 정도로 이루어진 기억들이었다. 다음은 그때 적은 것 중 일부다. 바람에 작은 파도처럼 일렁이던 들판 시를 낭독한 뒤에 사람들 사이에 감돌던 달콤한 정적 오랜만에 듣는 여름 풀벌레 소리에 한없이 위로를 받았던 것 처음 들어간 여름 바다에서 오랜만에 숨을 참고 잠수하자 뛰었던 심장. 호흡을 멈추고 수심이 깊어지니 천천히 가라앉던 심장 박동 소리. “그래 이거였지. 이 살아있는 느낌” 모든 게..

칼럼읽다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