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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

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입력 : 2025.01.30 21:24 수정 : 2025.01.30. 21:29 이훤 사진작가  지나간 계절을 이어놓은 듯한 덩굴, Linking Winters 겨울 잇기(2024). ⓒ이훤  “밤사이 내릴 강설로 인해 길이 미끄러울 예정이니 대중교통 이용, 눈길 미끄럼 등 주의 바랍니다.” 늦은 밤 안내문자를 받았다. 현관에 눈 삽과 장갑을 미리 챙겨놓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복숭아뼈만큼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사는 일이 버거웠던 시절에는 비슷한 문자를 받고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다. 밤새 눈이 온다는, 하늘이 무겁고 땅이 아슬아슬하니 조심하라는 건조한 문구가 내 삶을 관통하는 무심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누구의 삶에나 악천후로 가득 찬 절기가 찾아온다. 신이 가까이에..

사진놀이 2025.01.31

들킬 결심

들킬 결심입력 : 2025.01.15 20:46 수정 : 2025.01.15. 20:51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새해를 맞고 며칠 안 지나 겨우내 눈과 서리를 견디며 더 단단하고 더 달달해진다는 해남 겨울배추 수확 현장에 다녀왔다. 수년째 월간으로 발행되는 농업 전문지에 지역명과 나란히 등호를 붙여도 될 만큼 이름난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2월호 취재였다. 월간지 발행 특성상 한 달을 앞당겨 준비하는데, 보통 때 같으면 원고를 마감하고 열흘여 여유가 생기지만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진 설 연휴가 곧이고 2월은 짧은 달이다. 그제 2월호를 마감하고는 봄맞이 3월호 취재 후보군을 살피다가 아차 했다. 얼른 해가 바뀌길 바랐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날들 속에서 이렇다 할 회고도,..

칼럼읽다 2025.01.30

노스탤지어, 고향과 추억이 주는 따뜻한 위로

노스탤지어, 고향과 추억이 주는 따뜻한 위로입력 : 2025.01.21 21:10 수정 : 2025.01.21. 21:12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설 명절이 다가오면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고,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한편에 고향을 떠올리곤 합니다. 고향이란 단어만으로도 우리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향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고향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위로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감정적 자원으로 작용합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나의 마지막 엄마>는 신용카드회사에서 극소수 VIP 고객들에게 특별히 제공하는 가상의 고향 방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쁜 삶 속에서 잠시나마 고향의 따스함에 안겨 위로받는 ..

칼럼읽다 2025.01.29

찾는 일과 되찾는 일

찾는 일과 되찾는 일입력 : 2025.01.22 21:12 수정 : 2025.01.22. 21:18 오은 시인  찾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없는 것을 얻거나 여기 없는 사람을 만나고자 살피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희망과 이상을 좇고 새집과 새 친구를 구하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인생의 목표를 간구하는 일에 대해. 잃거나 빼앗기거나 맡기거나 빌려주었던 것을 돌려받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유실물을 다시 손에 넣고 상실했던 주권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 헤아려보건대 찾는 일의 근간에는 으레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찾는 일은 환희와도 연결된다. 부푼 마음으로 고향을 찾을 때, 숨 돌리기 위해 여행지를 찾을 때 우리는 설렌다. 안식처..

칼럼읽다 2025.01.28

‘영물’과 ‘요물’, 뱀의 두 얼굴

‘영물’과 ‘요물’, 뱀의 두 얼굴입력 : 2025.01.26 20:30 수정 : 2025.01.26. 20:36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오는 29일 설날이면 육십갑자 중 마흔두 번째 해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이 시작된다. 우리 민속에서 뱀이 지닌 상징성은 둘로 엇갈린다. 하나는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이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죽은 듯이 겨울잠에 들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이는 죽음으로부터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또 뱀은 많은 알을 낳아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특히 뱀 중에서 구렁이는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업신(業神)으로 모셔진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집안의 재산을 늘려준다는 구렁이”를 뜻하는 말로 ‘업구렁이’가 올라 있을 정도다. 이와 달리 뱀은 ..

칼럼읽다 2025.01.27

숨가쁜 세상, 심호흡을 권한다 [노정혜 칼럼]

숨가쁜 세상, 심호흡을 권한다 [노정혜 칼럼] 수정 2025-01-23 18:52 등록 2025-01-23 18:41 노정혜 |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계엄과 탄핵소추가 몰고 온 소용돌이 속에서 일그러진 국격과 사회갈등의 민낯들을 매일 접하다 보면, 울컥 화가 나고 욕설이 나온다. 타협과 양보의 정치력이라곤 전혀 없는 정치권의 한심스러운 양태가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숨구멍을 트이게 할 시원한 바람은 과연 불어올 수 있을까. 숨을 크게 쉬고 화를 가라앉힌다. 시원한 바람을 기대해 보는 소망까지 질식되면 큰일이다. 평정심을 찾으려 심호흡을 하며 숨쉬기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인간의 호흡은 들숨(흡)을 통해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날숨(호)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기체를 교환하는 행위이다. 허파..

칼럼읽다 2025.01.26

큰어른이 부재하는 대학

큰어른이 부재하는 대학입력 : 2025.01.21 21:06 수정 : 2025.01.21. 21:11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큰어른’은 더욱더 그렇다. 관건은 나이가 아니라 ‘나잇값’이다. 먹은 나이만큼 그 값을 해야지 어른도 되고 또 큰어른도 된다. 나잇값을 한다고 함은 그 나이답게 행한다는 뜻이다. 열다섯 살이 되면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이 되면 어른으로 우뚝 서며, 마흔이 되면 미혹되지 않고 쉰에는 천명을 깨닫는다는 공자의 통찰이 나이다움의 대표적 예다. 나이 예순에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 일흔에 마음먹은 모든 것이 천도, 다시 말해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음도 마찬가지다. 나이다움에 대한 오래됐지만 여전히 울림이 큰 가르침이다. 여기..

칼럼읽다 2025.01.25

풍요로운 미술과 메마른 작업

풍요로운 미술과 메마른 작업입력 : 2025.01.22 21:08 수정 : 2025.01.22. 21:12 박영택 미술평론가  매년 1월은 다양한 작가 지원금 심사가 있는 달이다. 각 지자체의 문화재단을 비롯한 여러 작가 지원사업의 심의에 간혹 참여하면서 드는 우선적인 생각은 대한민국에 미술인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곧바로 이들은 과연 어떻게 먹고사는지에 대한 의문과 걱정, 동시에 대다수 작업들이 어째서 이토록 진부하고 변변치 못한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작업으로는 도저히 먹고살기 어려울뿐더러 미술계에서 인정받거나 선택받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해서 많은 작가들이 과연 자기 작업으로 먹고살려는 이들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도 밀려든다. 사실 그런 것까지 고민해야 할 필요는 없다..

칼럼읽다 2025.01.24

‘농업판 전세사기’ 뒤통수 맞은 청년농민

‘농업판 전세사기’ 뒤통수 맞은 청년농민입력 : 2025.01.23 21:25 수정 : 2025.01.23. 21:27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요 몇년 자녀들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농민들의 소식을 듣곤 했다. 수도권으로 어렵게 올려보낸 자녀들이 월세를 절약해 미래를 준비하도록 쌀 팔고 깨 팔아 돈을 보탰건만 졸지에 사기를 당하고 말았으니 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까지 피해를 주는 악질범죄다. 그런데 요즘 청년농민들이 농업판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20대 대선에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농업농촌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청년농업인 육성 정책이다. 이제 표심에 큰 영향도 없고 한 줌도 안 되는 농업이 거추장스러워도 먹고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모든 대..

칼럼읽다 2025.01.24

물고기도 안다

물고기도 안다입력 : 2025.01.22 21:05 수정 : 2025.01.22. 21:12 이은희 과학저술가   ‘머리가 나쁘다’라고 누군가를 낮잡아 볼 때, 흔히 소환되는 동물 중 하나가 금붕어다. 금붕어의 기억력이 겨우 3초에 불과하다는 낭설은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봐도 물고기의 지능은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개의 물고기들은 뇌가 아주 작고 신경세포의 숫자도 1000만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다. 이는 어림잡아도 인간 뇌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며, 이렇게 작은 뇌는 신체활동을 유지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며 본능적 반응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정도다. 하지만 과연 정말 물고기는 속설대로 멍청한 걸까. 이에 반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바로 영국 U..

칼럼읽다 2025.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