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 49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요?

한글 맞춤법이 어렵다고요?입력 : 2025.01.20 21:18 수정 : 2025.01.20. 21:21 심완선 SF평론가  최근 본 기묘한 표기는 “펑 퍼짐함”이었다. ‘펑’과 ‘퍼짐’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으므로 둘은 별개의 단어다. 대강 조합하면 ‘펑 소리가 나며 퍼지는 일’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맥락상 그럴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펑퍼짐한 정도’라는 의미로 쓰인 표현이었다. 현대사회, 특히 온라인 공간에 파도처럼 몰아치는 무수한 텍스트 대부분은 한글 맞춤법 규정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읽는 쪽에서도 맞춤법보다 맥락과 의도를 중시한다. 그러니 표기된 대로 읽으려 하면 오히려 말뜻을 놓친다. 다시 말해, 정확하게 읽으면 틀린다. 한글 맞춤법의 띄어쓰기는 꽤 어렵다. 가령 ‘할 수 있다’는 원칙적..

책이야기 2025.01.22

소설의 힘과 가치

[다시 소설이다]소설의 힘과 가치 허희(문학평론가) 2025. 1+2.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들 2024년 2학기, 내가 어느 대학교에서 맡았던 강의는 〈소설창작연습〉이었다. 소설가가 아닌 평론가가 소설 창작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길 사람이 많으리라. 사실은 나도 그랬다. 하지만 소설 창작이란 자고로 타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는 데에서 시작하며, 습작에 대한 생산적인 비평과 피드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가르치지 못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의 계획서의 교과목 목표는 “소설의 힘과 가치를 이해한다.”로 정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소설의 범주를 문학으로 넓혀 생각하면 먼저 이런 주장이 떠오른다. 문학은 배고픈 누구 하나 구하지 못할 만큼 실질적인 쓸모가 없..

책이야기 2025.01.21

푸른색 한 줄기

푸른색 한 줄기입력 : 2025.01.16 20:59 수정 : 2025.01.16. 21:01 레나 사진작가  석양이 호수 뒤로 지고 있다. 서쪽 하늘로 사라지기 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레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 ‘푸른색 한 줄기(A Slash of Blue)’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황금의 물결 ― 하루의 둑 ― 바로 아침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A Wave of Gold - A Bank of Day - This just makes out the Morning Sky.)” 에밀리 디킨슨은 서쪽으로 지는 해의 황금빛과 서서히 다가오는 밤의 푸른빛이 섞인 저녁 하늘을 묘사하면서, 일몰의 태양이 다음날을 만들어낸다고 노래한다. 떠오르는 해는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매년 새..

사진놀이 2025.01.20

카랑칸풍카

카랑칸풍카입력 : 2025.01.15 20:48 수정 : 2025.01.15. 20:57 임의진 시인  사람은 죽고 없어도 목소리가 남는데, 사고 난 제주항공 보잉기는 어쩌라고 마지막 4분 기록이 날아간 것인지, 날린 것인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소설가 보르헤스의 ‘탱고’에 대한 4개의 강연 음성은 세계 문학사의 큰 보물이다. 37년 만에, 2002년 발굴된 이 테이프엔 보르헤스가 얼마나 탱고를 사랑했는지,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며 국립도서관장을 지내면서 찾아다닌 단골 밀롱가, “죽은 자들은 탱고 속에 살고 있더라”는 작가의 감상, 밀롱가에서 만난 오래된 별들의 회전춤을 유려하고 차근한 말들로 풀어내고 있다. 삶이 외롭고 쓸쓸할 때, 아르헨티나에서 배웠던 탱고의 기억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고..

칼럼읽다 2025.01.19

신호등이 가르쳐준 절제와 희망 [포토에세이]

신호등이 가르쳐준 절제와 희망 [포토에세이]윤운식기자수정 2025-01-13 18:29 등록 2025-01-13 16:50  파란색 신호등은 곧 빨간색으로 바뀔 것이고, 빨간색은 파란색으로 바뀔 것이다. 직진 신호라는 것은 빨리 달리라는 게 아니라 조만간 멈출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고, 정지 신호는 낙담하여 넋 놓고 있지 말고 다시 운전할 것을 기대하라는 신호다. 신호등은 절제와 희망을 가르친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사진놀이 2025.01.18

예측할 수 없는 하루

예측할 수 없는 하루입력 : 2025.01.16 21:00 수정 : 2025.01.16. 21:05 박준우 셰프  13년째 쭉 쓰고 있는 상표의 다이어리 한 권에 적을 수 있는 일정은 다음 해의 1월4일까지라 늦어도 12월 마지막 주에는 문고로 가 내년도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가는 해의 마지막 일정과 오는 해의 첫 일정을 옮겨 적는다. 그렇게 두 해의 가운데에서 끝과 시작을 보내다 보면 연하장이 들어있는 몇 개의 소포가 집과 가게로 날아든다. 뜯어보면 대개 달력이나 열쇠고리 같은 것들이다. 열쇠고리는 쓸모를 찾을 때까지 서랍에 넣어두면 되고, 달력은 부모님 댁으로 보내거나 서재에 걸어두면 되는데, 1월이 되어서야 도착한 다이어리들을 보면 조금 난감해진다. 하루에 쳐내야 하는 일이 열두 개라도 한 칸에 빼곡..

칼럼읽다 2025.01.17

붓끝에 따라오는 불과 꽃

붓끝에 따라오는 불과 꽃입력 : 2025.01.15 20:50 수정 : 2025.01.15. 20:58 성현아 문학평론가  1933년 5월, 베를린 광장에서는 반(反)나치적인 도서로 분류된 책들이 불태워진다. 프란츠 카프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의 저서도 이때 태워진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미하 울만이 설치한 조형물 ‘도서관’의 안내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의 문장이 쓰여 있다. “그것은 다만 서곡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태울 것이다.” 실로 분서가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진행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서적을 대상으로 한 탄압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일어난다. 당시 책 파기에 동원되었던 한 교사는 당국에서 봉건적, 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한 책들을 ..

책이야기 2025.01.16

당진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사는 일은

당진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사는 일은  작년 1월부터다. 당진에 내려와서 시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운이 좋은 건지 모르지만, 우강 소들빛작은도서관에서 시수업을 겨울 봄 여름 가을 네 차례에 걸쳐 수업을 했다. 그때마다 작은 창작 시문집을 만들었다. 더욱 고마운 일은 그분들이 시를 쓰면서 내 시를 돌아보다 사고를 냈다. 당진문학인 공모사업에 내 시가 뽑혀, 내 첫 시집까지 내게 되었다. 이것 역시 운이 따랐다. 그 이야기를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웹잡지에 싣기도 했다. 그분들이 시를 쓰고 그걸 도와주는 수업을 준비하다 내 시를 고쳐 썼다. 시가 무엇인지 시수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이 일방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수고를 한 만큼 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다양한 시를 살필 수 있었다. 소들빛작..

하루하루 2025.01.16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집의 묘미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집의 묘미 글_김해리(문화기획자)   『앤티크 수집 미학』, 박영택 저, 마음산책, 2019  나에게는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최근에는 우리의 옛 물건에 푹 빠져 있다. 주변에서 ‘너는 왜 그렇게 오래된 것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명쾌하게 답하기 어려웠는데 『앤티크 수집 미학』에서 ‘인간의 손길이나 시간의 자취, 사라져 버린 흔적이 머문 자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이 된다’라는 문장을 보고 ‘맞아, 이거야!’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된 물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라는 점이다. 내가 몰랐던 역사에 관한 이야기든, 비밀스러운 이야기든 물건 하나를 놓고 끊임없이 상상하고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옛 ..

책이야기 2025.01.15

불가능성에서 찾아낸 가능성

불가능성에서 찾아낸 가능성입력 : 2025.01.09 21:10 수정 : 2025.01.09. 21:14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지난해 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지난 16년 동안 이어온 직함이다. 2008년 가을밤의 첫 수업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업을 몇 시간 앞두고 야학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수업 형태로 진행한다고 했다. 현장수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견학이나 야유회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막상 가보니 시위 현장이었다. 그날 서울시교육감이 장애인교육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하자 교사와 학생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수업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몸싸움이 계속되었다. 수업이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수업시간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거짓말처..

칼럼읽다 202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