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
입력 : 2025.02.26 20:55 수정 : 2025.02.26. 21:00 박영택 미술평론가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학생들과의 수업은 힘들다. 그들은 두꺼운 종이책 자체를 꺼린다.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요약·정리하는 PPT로 진행되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학생들의 발표도 PPT로 이루어진다.
대개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정보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정보를 복사해서 짜깁기로 이룬 것들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책의 갈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유를 톺아보는 게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들을 그대로 옮겨와 읽어대는 학생들의 발표를 듣는 일은 곤혹스럽다.
힘겨운 독서와 고단한 사유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의 과제는
마냥 건조하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종료된다.
아울러 책을 소개하고 해당 책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공지하면 아이들의 원성이 크다.
책을 살 돈이 없다거나 부담이 된다는 불만이다.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이른바 해당 수업의 진도 내용과 참고문헌을 적어나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은 이 책들을 읽기나 할까?
하나의 과목을 온전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고 체득해야 하는 책들이 있게 마련이다.
최소한의 필독서를 선별한다 해도 족히 7~8권 이상일 것이다. 나는 책의 목록을 적다가 지워버렸다.
실현 가능한 일을 생각하자는 쪽이었다. 그래서 대략 2~3권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것도 읽지 않는 학생이 더 많을 것이다.
대학에서의 수업은 결국 문자와 언어로 이루어진다.
공부를 하는 데 읽고 쓰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 여전히 그렇다.
뛰어난 책을 공들여 읽어가면서 그 맥락을 주의 깊게 헤아리고 자기 생각을 부풀려내는
나름의 고투가 진행되는 독서 행위란 것이 이제는 마치 아득한 시절의 뒤처진 일로 여겨지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아니 나에게 여전히 책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이 기술로 대체되고 인공지능(AI) 등이 압도하는 상황이 더 빠르게 다가온다 해도
독서 행위 자체를 지워낼 수는 없다.
내가 하는 수업이란 대부분 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거나 작품 자체를 분석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한 작가의 생애와 세계관,
그의 미술에 대한 시각,
활동하던 시대의 역사적 조건,
미술사의 흐름과 영향,
당대 문화적인 사건들과의 연결고리 등이 마구 얽혀 있다.
작품 자체가 지닌 조형적인 힘과 매력을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는 수업이자 예술이란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곱씹어보는 것이다.
그러니 폭넓은 독서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나는 강의할 때 수업 내용을 요약한 PPT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미지 하나를 화면에 띄워놓고 학생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언어에 의지해 끝까지 밀고 나가본다.
또는 책을 같이 읽어나가면서 문장에 고리를 걸어 깊은 해석으로 내려가 학생들이 작품과 텍스트에 대해, 나아가 세상과 사물에 대해 예민하게 감득하도록 채근한다.
그것은 한없이 말랑거리는 해설이나 유미적인 관조에 머물지 않는다.
마치 도슨트나 작품해설사들의 다소 틀에 박힌 설명이나 그럴듯한 레토릭으로는 도저히 감싸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다소 고통스럽게 알아가는 지난한 과정이어야 한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온전히 체득하고 나아가 개인적인 해석과 날카로운 안목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본인의 넓고 정밀한 독서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래야 한 개인이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게 되고 지금까지의 시간과도 결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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