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의 식당 사장님 되기 [슬기로운 기자생활]
박지영기자
수정 2025-02-20 19:16 등록 2025-02-20 19:10
박지영 | 산업팀 기자
요즘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넷플릭스에 업로드되길 기다리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 ‘요식업 멘토’로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진행하는 ‘백종원의 레미제라블’(ENA)이다.
“100일간의 인생 역전 프로젝트”를 내건 이 프로그램은 “짧지만 강렬한” 인생사를 겪은 20명의 도전자가 ‘백종원표 스파르타식’ 미션을 수행하는 장사 서바이벌 예능이다. 처음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음식과 성장 스토리, 거기에 서바이벌 형식이 결합한, 그것도 메인 진행자가 ‘또’ 백종원 대표인 이 프로그램이 너무나 진부해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재밌는지 보자.’ 매의 눈으로 평가해보겠다는 자세로 첫 방송을 시청했다.
제작진의 설명대로 도전자 20명의 인생사는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때 도박·알코올 중독자였던 청년부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자립준비 청년까지.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선 접할 수 없었던 출연자들의 면모는 프로그램 형식이 갖는 진부함을 어느 정도 넘어섰다고 느꼈다.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끝까지 밀어붙이며 도전에 임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내건 ‘인생 역전’ 목표엔 다소 회의적인 마음이 든다.
지난해 전국 음식점 10만7526곳이 문을 닫으며 사상 최대 폐업률을 기록한 현실을 보면, 과연 고된 도전 끝에 우승자가 ‘자신의 가게’를 차려도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한겨레가 199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0년치 인허가·폐업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폐업률은 최근 4년 연속 상승하며 일반음식점의 경우 10.4%까지 치솟았다.
음식점 10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는 뜻이다.
신용카드 대란을 거쳐 신용불량자가 넘쳐나던 2005년(11.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음식점 경영 사정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 역시 코로나 대유행 첫해인 2020년을 분기점으로 악화하는 상황이다.
장기화한 경기 불황, 치솟는 물가가 겹친 자영업 현실은 고작 100일간의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난’ 우승자가 극복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음식 장사로 몰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것마저도 못 하겠다’ 싶은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들은 먹고살 것이 마땅치 않아요.”
지난달 만난 40~50대 음식점 사장님들의 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3년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를 보면, 일반음식점 업주의 평균연령은 55.4살이다. 방송에서처럼 청년들은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부모·자식을 이중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앉아버린 중장년층에게 어쩌면 희망이란, 더욱 먼 이야기는 아닐까.
이번주 토요일 방송하는 ‘레미제라블’ 12회에선 우승 후보 3명이 최종 결정된다. 소년범 출연에 대한 일부 시청자들의 비판, 최근 백 대표를 둘러싼 연이은 악재 등 이 프로그램과 관련한 아쉬운 평가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도전에 임한 출연자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차가운 겨울을 버티고 있는 전국의 모든 음식점 사장님들에게 따뜻한 봄기운이 스며들길 바라본다.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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