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눈 뜨기 연습

닭털주 2025. 3. 31. 11:06

눈 뜨기 연습

입력 : 2025.03.30 20:48 수정 : 2025.03.30. 20:50 복길 자유기고가

 

 

집 앞 하천에 물이 마르면 괜히 눈이 삐뚤어졌다.

냇물을 제집 수도처럼 쓰는 골프장과 저수지 근처의 도축장 공사판을 종일 탓하느라 그랬다.

 

야속할 만큼 오지 않던 비는 내 눈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쯤 소리 없이 내렸고, 하천에 물이 차면 모난 마음이 조금씩 깎였다. 산천이 대수냐, 저 미운 골프장 방문객들이 마을을 먹이고 살린다. 쌀밥을 한술 떠 제육 반찬을 올리고 둥글어진 속에 넣었다. 마음에서 깎여 나간 모서리가 목구멍에 가시처럼 박혔어도 밥알을 뭉쳐 삼키면 그만이었다.

 

개천 음쓰·축사 오물그늘진 풍경

 

계획에 없던 귀농이었지만 안개가 끼면 함께 쉬고, 가문 날엔 함께 우는 이웃의 존재는 이곳에 평생 머물 이유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해가 뜨면 소란스럽고 해가 지면 고요해지는 촌의 시간이 좋았다. 농사짓는 이들의 묵묵함이 만든 푸르고 누런 들판을 누비다가 수줍게 인사를 건네면, 밭에서 난 인심이 채소와 과실을 소쿠리째 안겼다. 물은 맑고 별은 밝아 늘 사철 지나는 모습까지 선명하니 이곳의 자연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내게도 일 년을 살아낸 뿌듯한 기분을 줬다.

 

하지만 사람은 때마다 철이 든다.

몇해가 지나자 철없던 도시것인 나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농촌에 대한 환상도, 원주민들의 텃세도 없었다.

편의시설과 문화공간의 부재 역시 불편해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 탈이 나기 시작한 건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개천에 버리는 이웃 식당 주인을 목격하면서였다.

사장님, 그렇게 버리시면 안 되죠!”

다급하게 뱉은 말에 식당 주인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도시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결국 다 논밭 거름으로 쓴다!”

뭘 모르는 애송이에게 한 수 가르쳐 주듯이.

 

낙원도 사람이 머물면 금세 고통이 고인다.

우연히 목격한 그 하나의 장면은 또 다른 장면과 연결되며 나를 쉴 새 없이 괴롭혔다.

 

밤이 되면 집집마다 마당에서 쓰레기를 소각했다.

그 연기에 돼지 축사의 오물 배출 냄새가 섞이면 여름에도 창문을 열 수 없었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던 울창한 숲은 골프장 건설을 위해 언제라도 잘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외부인들이 유기해 들개가 된 개들은 사고를 당한 채 절뚝이며 돌아다니고, 짧은 줄에 매여 맞으며 길러지던 개들은 개장수의 방문 한 번에 자취를 감춘다. 하루에도 몇번씩 가축을 실은 트럭이 내 앞을 지나간다. 보도도 없는 길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 케이지 속 돼지의 눈과 마주쳤을 때 결국 나는 눈을 감았다.

 

도시것의 비위로 농촌 욕보여

 

실컷 농촌을 욕보였지만 사실 이 광경들이 내 얼굴의 그늘을 만든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 고통은 모두 도시것인 나의 비위 문제이기 때문이다.

 

펫숍유리 너머의 강아지를 귀여워하며 자란 나는 고작 플라스틱 배달 용기를 씻어 말리며 환경을 위한다고 우쭐댔고, 외식을 할 때면 만만하게 기름진 치킨과 삼겹살을 선택하며 소독된 살점을 씹는 행복을 누렸다.

농작, 소각, 축산, 정화.

내 모든 환경이 외주화된 공간에서 나는 언제나 향기롭고 깨끗했다.

그러니 나무가 베이고 물이 말라도 내 한숨은 기만이었다.

산천의 풍경이 훼손될까 아쉬워하면서도 그곳을 휴양 공간으로 삼는 이들, 농촌 강아지의 처우를 슬퍼하면서도 죄책감 없이 바비큐 페스티벌을 여는 이들.

세상과 세상이 단절되어 있다고 믿는 무리 속에 내가 있었다.

 

얼마 전 산불로 인한 주변 마을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서도 이웃들이 나섰다. 그들은 시커먼 산을 보며 넋을 놓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더 이상 쓰레기를 집 앞에서 소각하지 말자는 서명을 받으러 마을을 돌아다닌다.

 

이들은 이전엔 농사를 지으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매일 차를 내는 사람,

고립되지 말자며 크고 작은 이벤트를 열어 마을 간 교류를 추진하는 사람,

동네의 유기견과 유기묘를 거두어 예방 접종과 중성화를 시키는 사람,

책 읽는 모임을 만들고 작가를 초청해 북 콘서트를 여는 사람,

작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서명을 받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농촌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구간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풍경이 모두 같아 지겹기만 한 바로 그 구간. 모든 것을 수탈당하고 미개하다는 모욕까지 받는 이 구간의 사람들은 적어도 도시와 농촌이 연결된 공간임을 알고 있다.

도시도, 농촌도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서로가 피안의 공간이 될 수도 없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법이 도피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고 믿던 나는 눈을 바로 뜬 채 온몸으로 이 구간을 살아가는 이들 앞에서 주눅이 들고 만다.

그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사는 법과 계란으로 바위 치는 법을 배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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