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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실험용 쥐로 만드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

닭털주 2025. 3. 18. 10:06

아이들을 실험용 쥐로 만드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

입력 : 2025.03.13 21:01 수정 : 2025.03.13. 21:06 손제민 사회에디터

 

 

3월 한 초등학교 교실. 교사는 각자 지급된 태블릿 PC로 학생들에게 영어 학습을 시켰다.

아이들은 각자 아는 만큼 자기 속도에 맞게 답을 누르고 기기가 알려주는 점수에 기뻐하거나 실망했다.

한 아이는 스마트폰 게임하듯 수업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음 수업은 자신의 수준에 맞게 난이도가 조절된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 학급의 풍경이다.

 

올해 초중고등학교 일부 학년에 AI 디지털교과서가 처음 도입됐다.

AI교과서는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기기에 옮겨놓은 기존 디지털교과서에 생성형 AI를 탑재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 도구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결합해 학생 맞춤형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학습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교실에 학생 수만큼 보조교사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에게 실물을 보여주거나 의사를 확인한 적이 없지만 교육당국의 강력한 추진으로 전국 학교 가운데 3분의 1이나 채택했다.

 

AI교과서에 대한 반대론은, 그 길로 가는 게 불가피하지만 준비가 충분치 않다는 게 주류인 것 같다.

최신 기술이 신중하고 책임있게 쓰일 때 교육 현장을 돕는 유용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4년간 초중고 AI교과서 구독료로 수조원(국회 입법조사처)을 쓸 것으로 예상되는 이 사업은 그런 차원이 아닌 것 같다.

교육부가 학교 현장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도로 추진하는 것이다.

 

기기나 시설·인건비, 전력 비용을 포함하면 재정 소요는 더 클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 예산이 삭감되느냐 마느냐 하는 현실에서 비용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건 그것이 바꿀 교육의 성격이다.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계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거나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현실에서 교육마저 그렇게 이뤄진다면 심각하다.

 

문제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시간, 여백을 갖게 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즉각 답을 얻어내는 데 교육의 주안점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교실로 돌아가면,

이 아이들은 더 이상 외국어 수업 특유의 텐션높은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읽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학생과 선생님이 눈을 맞추고 대화를 주고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짝꿍과 시험지를 바꿔 채점해주며 때론 장난도 치는 즐거움도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 태블릿 속 교사와 대화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맞춤형이란 명분하에 아이들은 점점 더 기계가 인도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오윤주 교사는 녹색평론’ 2025년 봄호에 쓴 디지털교육이라는 신화에서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도입된 기술들을 돌아보며 유용한 도구들이 있다 해도 그것은 수업을 일부 도울 뿐 배움의 총체적 맥락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교육은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의 전면적인 만남이다.

개인 맞춤형 질문과 답처럼 효율적이진 않아도,

교실에서 떠들고 노는 것처럼 보여도,

사회를 배우고 협력을 경험하며 때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이로움도 느끼는 것이 교육이다.

 

한국 사례는 너무도 큰 변화여서 세계 교육계도 놀라고 있다.

유네스코 글로벌교육모니터링(GEM) 보고서 작성팀은 지난 13일 한국의 AI교과서 도입 경과와 논란을 소개한 뒤 아무도 교육에서 실험용 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에서 다른 나라는 한국의 대담한 변화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흥미롭게 지켜보면 된다고 했다.

 

졸지에 학생들을 실험용 쥐로 만든 이 무책임함은 어디서 왔을까.

입시 경쟁으로 왜곡된 교육 여건에서 팬데믹을 거치며 에듀테크기업들이 급성장한 것과 관계 있을 것이다.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신봉하는 시장주의자 교육수장의 철학이 날개를 달아줬을 것이다.

AI교과서 도입은 교육적 요구에서만 출발한 게 아니라

이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사업적 맥락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

 

근저에는 AI 기술의 미래를 낙관만 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무슨 일에든 “AI로 대체하면 어떻겠느냐는 반응이 쉽게 나오는 이 사회의 기술지배적 패러다임은 매우 강력하다. 이것은 모든 일에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시하는 논리다.

기술 도입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필요하다고 한 적 없는 기술을 개발해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않다. 무엇보다 사회 불평등, 지역 격차 등과 복잡하게 얽힌 교육의 난제를 직시하기보다 기술이 만능열쇠처럼 일거에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은 기술에 대한 신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