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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울’을 건너는 법

닭털주 2022. 4. 1. 11:56

시대의 우울을 건너는 법

고영직 문학평론가

 

 

우울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 블루의 영향이 크겠지만, 세상일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우울한 마음 상태에 사로잡힌 경우가 적지 않다. 내 주변에도 혼자 사는 것은 외롭지만, 같이 사는 것은 괴롭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울증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에서 기쁨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알 리 만무하다.

우울증은 심지어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공동체까지 파괴한다.

 

우울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미룰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3월은 잔인한 달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월별 진료 추이에 따르면,

3월에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20년 우울증 환자가 84만명에 달했고, 이는 201664만명에 비할 때 30% 증가한 숫자라고 한다. 매달 진료를 받는 환자들도 20만명을 넘어섰다. 10대와 20대들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급증했고, 전체 환자 중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이다.

한국인의 정신건강이 위험해진 것은 마음생태학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불구하고 돈 되는 것, 부자 되기의 열풍이 우리 마음을 온통 사로잡으면서 지금 당장의 고통을 회피하며 현재지상주의(presentism)적 삶을 추구하려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어크로스)에서 퇴직자들의 공동체에서 현재지상주의의 기운을 발견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현재지상주의는 자아 바깥의 세상에 무관심하며 좀처럼 이타주의적 마음을 보이지 않는 태도라고 마사 누스바움은 덧붙인다. 경제적 생존의 공포에서 벗어나 생활을 회복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생태적 삶으로 전환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여기의 우울은 따라서 시대의 우울이라고 보아야 옳다.

시대의 우울을 넘어 우리 모두가 기쁨의 감정을 찾을 수 있는 마음생태학을 회복하도록 예방적 사회정책을 펴야 한다. 우울증의 특효약은 햇볕이라고 한다. 청소년 시절 3월이면 거의, 언제나, 항상 신학기 증후군을 앓곤 했다. 그때마다 3월 한낮 햇볕을 쬐면서 숲과 거리를 배회하며 두 발의 고독을 경험했다. 부서지기 쉽고 상한 영혼을 위해 햇볕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셈이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항목에 곧잘 등장하는 카미노 순례길 같은 코스를 찾아 탐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런 순례길 여행이 자신과 화해하며, 슬픔과 기쁨 그리고 용서로 가득한 길이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지금도 봄날 산책은 계속된다.

이문재의 시 나는 걷는다를 왼쪽 가슴에 품은 채 발걸음을 내딛는다.

국가는 걷지 않는다/ 기업은 걷지 않는다/ 경전은 걷지 않는다/ 문명은 걷지 않는다/ 인류는 걷지 않는다// 나는 걷는다/ 내가 걷는다.”

나는 특히 주격 조사가 나는에서 내가로 변환되는 마지막 두 행에서 말할 수 없는 삶의 비밀을 엿본다. 우울하고 비통한 자들을 위한 깊은 통찰의 비밀이 행간에 부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봄날, 온몸에 햇살을 받으며 홀로 걸으시라.

 

봄날 산책코로나 블루우울증시대의 우울이문재의 시나는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