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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베이비부머', 노후엔 여기로 간답니다

닭털주 2024. 6. 4. 18:48

서울 사는 '베이비부머', 노후엔 여기로 간답니다

노후 주거 환경 뚜렷한 대안 없어... 그룹홈 등 고령 인구 위한 대안 주택 필요

24.06.03 20:58l최종 업데이트 24.06.03 20:58l 이혁진(rhjeen0112)

 

 

나는 69세로 서울에 산다. 50여 년 전 서울에서 학교를 함께 다녔던 고교와 대학 동창들은 졸업 후 대략 반은 서울에 나머지 반은 지방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서 함께 공부했지만, 지금은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자주 연락하는 동창과 지인들에게 노후를 맞아 몇 가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현재 사는 집이 노후에 괜찮은지,

이사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고려할지,

나아가 만약 혼자되거나 몸이 아파 누구에게 의탁할 경우 이에 대한 대비 등을 물었다.

 

결론은, 유감스럽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여생을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모호한 입장도 많았다.

주거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적응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여기고 있었다.

 

나이 들고 자식들이 성장해 결혼하면 우선 사는 집을 줄이는 게 순서다.

서울 아파트에 사는 친구 대부분 10년 전후 아파트를 처분하고 경기도 성남과 광주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했다.

수입은 쪼그라들고 지출이 느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서울 사는 것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이제는 경기도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살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노후에 경기도로 이전하는 '베이비부머(1955년부터 64년까지 출생한 사람들)'가 많을 것이다.

 

은행에서 10년 전 퇴직한 대학후배는 경기도 양평에서 한두 해 살기 위해 잠시 '귀촌'했다가,

아예 그곳에 자리 잡고 정착했다.

생각보다 서울 오가는 길이 불편하지 않고 살아보니 물과 공기가 좋아 건강에도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 중 한 명이 아프거나 사별로 혼자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후배는 그럴 경우 큰 병원이나 요양원이 있는 지역으로 이전하는 걸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혼자서 텃밭을 가꾸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인 중 올해 80세 동갑부부가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인데, 지난해 남편이 쓰러지면서 아내가 수발 중이다. 그런데 최근 고민이 깊어진 것이, 아내가 가사는 물론 간호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떨어지고 우울 증세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가족들이 요양원을 알아보고 남편 측에 권했더니, 그가 거긴 가기 싫다며 펄펄 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외국인 노동자 가정부를 구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요양원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간호를 받으며 살기로 한 것이다. 아직은 요양원에 대한 거부감이 큰 현실을 보여준다.

 

밤에 외롭고 무서워 TV 켜놓고 잔다는 할머니도

 

한편 동네 '쌈지공원'에서 매일 모여 하루하루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사례는 한국 사회 노인들의 현주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만나보면, 가족과 사는 할머니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80세 넘은 독거노인들로 공원 근처 빌라와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프거나 병원 갈 급한 일 있으면 잠깐 들르지만 자식들과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내다시피 하고 있다. 이곳 할머니끼리는 자식과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단다.

 

이들 할머니들은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하다.

형동생 하면서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들 할머니들은 공원에서 하루를 소일한다.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갖다 놓고 지낼 정도다.

 

이들 중 할머니가 늦게 오거나 한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집을 찾아가 안부를 확인한다.

직접 가는 게 빠를 정도로 그 흔한 핸드폰도 거의 쓰지 않는다. 핸드폰은 그저 비상용이다.

 

매일 작은 스피츠 품종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에 오는 한 할머니는 이 강아지가 자식보다 더 낫다 할 정도로 서로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무료해 경로당에 가봤지만, 일부가 텃세를 부리고 서로 시기하는 분위기가 싫어 이후 쌈지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이들의 소박한 바람은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것이다.

혼자 사는 걸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롭고 두려워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습관이 오래됐다고 했다.

한 할머니는 자신이 죽을 때 누군가 곁에 있는 게 소원이라고도 말했다.

 

공원 할머니들과 풍경을 보면 장차 어떤 노인주택이 필요할 지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노인들이 숙식을 함께 하면서 서로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그룹홈'이 그것이다.

실제 일부 지방에서는 경로당을 개조해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나 또한 내가 사는 단독주택을 '대수리' 할 예정이다. 옛집이라 95세 아버지와 우리 부부가 살기 불편한데, 이걸 편하게 개조하려는 것이다. 지금 사는 집은 낡고 수리가 필요해 여러모로 불편하다. 대수리 계획은 이곳에서 생활을 계속하려는 의도이다.

 

아내는 말년에 지방 조용한 곳의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건강이 허락되고 경제적으로 뒷받침되면 서울에서 다소 멀어도 지방에 사는 걸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이다.

 

고령인구 위한 대안책 고민해야

 

고령화에 따른 노인주택이 이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될 게 아닌 것 같다.

지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5명 중 한 명은 배우자와 자녀 없이 홀로 산다고 한다.

고령일수록 독거노인 1인가구가 늘고 있기도 하다.

 

요즘 고령자를 위한 거주대안으로 떠오르는 '실버타운'도 아직은 다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증금과 월 관리비가 비싸고 실버타운이 생각보다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개선이 시급하다.

 

고령인구가 당연해진 해외 사례는 우리에게도 곧 닥칠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함께 숙식하고 임종실을 갖춘 노인주택건설을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한단다.

독일은 반려동물과 함께 입소하는 노인주택을 분양하고 있다는 소식도 봤다.

 

실버주택, 고령자주택, 시니어하우스, 노인복지주택 등 명칭은 다양해도

고령자들이 결국 노후에 살고 싶은 곳은 자기 집처럼 편한 곳, 마음 나눌 벗들이 근처에 있는 곳이 아닐까.

이제 여기에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해, 정부가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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