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동네책방과 도서관, 상생할 수 없을까요

닭털주 2023. 2. 19. 10:12

동네책방과 도서관, 상생할 수 없을까요

 

[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어느 날은 책방의 존재 이유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멍하게 손님을 기다릴 때, 드문드문 오는 손님마저도 가볍게 둘러보곤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남기고 나설 때, 가뭄에 단비 내리듯 오후 늦게 첫 손님을 맞이하지만 찰칵찰칵 사진 몇 장 찍는 소리만 남기고 사라질 때, 그럴 땐 오늘까지만 하고 문을 닫아야 하나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깊은 늪에서 저를 건져 올리듯, 가슴속에 조금은 뜨거운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여행객으로 보이는 네 식구가 서점에 들렀습니다. 사진 몇 장 찍고 나가겠거니, 제발 책을 함부로 다루지만 않는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반쯤 체념하고 있었는데, 서가를 신중히 천천히 한 권 한 권 제목을 다 기억하려는 듯한 자세로 열심히 둘러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손님은 그렇게 서가에서 책을 한두 권씩 뽑아들더니 십여 분을 둘러보곤 40여 권의 책을 들고 왔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많아 욕심을 내서 이렇게 구입하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도서관을 운영하고 계셨고,

그곳은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굿즈들을 챙겨드리고 10% 할인해드리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제가 그날 얻은 것은 그동안 느껴온 회의를 말끔히 걷어낸 개운함이었고, 저의 안목과 신뢰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서점 문을 연 지 5년이 되었어도 지역 도서관이나 학교와는 거래 없이 겨우 버티고 있지만 도서관에서 서점의 큐레이션을 믿고 꼼꼼히 구입해주니 지역 서점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했고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도 느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점가에 걱정을 불러일으켰던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지난달 23일 법사위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도서정가제는 명맥을 유지했지만 공공도서관은 10% 직접 할인만 적용받고 5% 간접 할인은 받지 않는다라는 기존 조항에서 대학 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은 적용 범위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공공도서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부류가 빠진다면 이 조항은 유명무실해지지 않을까요. 또한 지역서점 우선이용 독려라는 표현이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며 우선을 빼기로 수정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서점으로 편중된 정책들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이 소식을 듣고 얼마 전 다녀간 그 도서관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서점과 도서관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도서관에선 양질의 도서를 확보하고, 지역 서점 또한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하루에 오고가는 손님이 적고 비록 팔리는 책이 적어 좌절할 수는 있지만 책방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공공기관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최세연 완벽한 날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