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글쓰기 홈그라운드’는 어디인가요
[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공간과 글쓰기
조금이라도 꾸준히 써야 향상
능력·집중력 최대치로 뽑아내
‘내 안의 작가’와 만날 수 있는
가장 편한 장소·시간 찾아서
수정 2024-07-06 11:01등록 2024-07-06 09:00
노란색 벽면이 특징인, 영국의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작업실 모습. 교육방송 동영상 갈무리
요즘 ‘가능성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하고 끝낸다고 합니다.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나 정보를 찾아보고 강의도 듣는데 막상 글을 쓰는 건 미뤄두는 거죠.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는 다 아는 것 같고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자기 손으로 꼼꼼하게 고쳐보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장점만 쏙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고들 합니다. 글쓰기 근육을 키우고 단련하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쓰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죠. 매일 한 줄을 쓰더라도, 아니 단어 하나라도 계속 써야 쓰고 싶은 게 떠오르고, 또 쓰고 싶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다음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물의 마중물이라고나 할까요. 무언가를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면서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되고, 실력이 향상되듯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하게 되는 것, 습관이죠. 이 습관의 힘이 글쓰기에 잘 적용된다면 분명 좋은 결과물이 탄생될 겁니다.
짧은 글일수록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그런 글이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글쓰기에 일정 시간을 할애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생각이 행동을 바꾼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행동을 먼저 하면 생각이 바뀌고 지속하게 되기도 합니다. ‘선 행동, 후 동기부여’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일단 한번이라도 시작하면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과 해냈다는 자신감, 그리고 날마다 뭔가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자기 모습에서 느껴지는 성취감이 점점 더 나은 글을 쓰는 데 추진력을 더해줍니다.
제가 많은 분의 글에 대해 조언하고 방향을 제시할 때 떠올리는 말이 있습니다.
“단점을 지적하지 마라. 자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미국의 개 훈련사 시저 밀란의 말인데,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글쓰기 지도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분이 자신의 재능을 잘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그분들 안에 숨어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일이 제게는 보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막상 자신의 장점은 잘 몰라도 단점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려고 하면 내가 자신 없는 부분, 자주 실수하는 것 등 단점들이 이것저것 떠올라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거나 아예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단점만 바라보면 자꾸 그 부분에 얽매이고 갇히게 돼서 새로운 방향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단점을 고치고 바꾸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이는 것 같습니다. 장점에 집중해서 강화하는 편이 더 적은 노력으로 훨씬 수월하고 빠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홈그라운드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은데요,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관중들에게서 전해지는 응원과 격려로 올라가는 자신감이 선수들의 기량을 충분히 끌어내고 모두의 시너지를 높이게 됩니다. 글쓰기에서도 이런 홈그라운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강의를 하면서 적어도 그 시간과 공간만큼은 모두에게 홈그라운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 덕분인지 자신의 글솜씨뿐 아니라 글을 통해 드러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창피함보다는 더 나은 방향, 더 좋은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나고, 그 에너지가 결국은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익숙한 곳 vs 새로운 장소
이런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것도 글쓰기를 실행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압박이나 방해 없이, 모든 걸 잊고 온전히 내 안의 작가와 만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보세요. 나한테 맞는 것들을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작가 줄리언 반스의 작업실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온통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조금 의아했는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도 해가 드는 것처럼 빛나는 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서’라는 말에 납득이 됐습니다. 어떤 장소와 어느 시간이 자신의 글쓰기 능력과 집중력을 최대화할지는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있고 저녁형 인간이 있듯이 글쓰기에도 각자에게 맞는 시간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글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하고만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내서 확보하는 것입니다.
15분이든, 30분이든 시간의 길이보다는 꾸준히 규칙적으로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이 하루 중 자기를 위해 뭔가를 하는 시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꾸준히 시간을 내는 데 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의를 하고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글쓰기를 통해 많은 분이 생각보다 빨리 변화되는 걸 느끼고 글의 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을 바꾸는 세 가지는 시간을 달리 쓰는 것, 공간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공간을 바꾸면 만나는 사람이 바뀌고 생활 루틴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익숙한 장소가 글쓰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작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간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곳에 가야 좋은 자극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 안에서 안정감을 주는 조용한 곳도 좋고,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카페의 한구석도 괜찮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편한 곳이면서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세요.
다만, 일하는 공간과는 분리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자꾸 일 생각이 나서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날마다 집안일을 하는 곳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추억이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공간도 피하는 게 좋습니다.
글을 쓸 때 그 장소나 어떤 물건으로 인해 잡념에 빠지거나 묻어뒀던 상처가 떠오를 수도 있어서 오히려 방해를 받게 되니까요.
벌써 올해의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평균 두달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더워서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것과 동시에 들뜨고 설레는 마음도 함께 드는 이 시기에 시험 삼아 딱 두달만 투자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자기한테 맞는 글쓰기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습관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자신이 실천 가능한 정도로만 말이죠.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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