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

닭털주 2022. 2. 19. 14:36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

 

박권일

 

 

몇 해 전 어느 소설가가 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국에 서생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머리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들이 옳으냐 그르냐의 싸움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주자학을 신봉했던 나라답, “서생의 문제의식은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상인의 현실감각은 그렇지 않다.”

 

일단 조선과 대한민국을 비슷한 사회로 보는 관점에 뜨악하게 된다.

게다가 서생이 너무 많다는 의미가 옳고 그름을 따져 묻는 데 집착한다는 것이라면,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이 원리원칙과 시시비비를 따지는 데 깐깐한 사회였다면, 세월호 참사는 애당초 일어날 수 없었다. 삼풍백화점은 그렇게 주저앉지 않았을 것이고 성수대교는 지금도 건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실제 모습은 소설가가 상상한 것의 반대에 더 가깝다.

저런 사건이 한두 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일어난 이유는 명료하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특히 자본과 권력을 쥔 자들이 원칙과 윤리라는 문제의식을 내던지고 속도, 효율, 가성비 같은 현실감각만을 극단적으로 좇았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터로도 나타난다.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세속합리적 가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속합리적 가치란 과학과 기술, 표준화를 선호하며 자본주의적 이해타산이 빠르단 의미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 유리한 가치관, 이를테면 상인적 합리성이다.

반면 자기표현 가치’, 약자·소수자에 대한 관용, 사회적 신뢰, 성 평등,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 등에서 한국은 비슷한 경제수준의 나라와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졸저 <한국의 능력주의> 참고)

한국인은 인종차별도 그냥 하지 않는다.

출신국가의 국민소득에 따라 철저히 을 나눠 합리적(?)으로 차별한다. 귀화한 역사학자 박노자는 한국인의 이런 습속에 혀를 내두르며 지엔피(GNP) 인종주의라 이름 붙였다.

물론 조선의 지배계급이 음풍농월하다 시류를 읽지 못하고 망국에 이른 과오를 기억하고 경각할 필요는 있다. ‘서생의 문제의식만으로 상인의 현실감각을 도외시하면 안 되는 것도 원론적으로 맞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위기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도생의 질주가 격화된 나머지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 자체가 주제넘게 느껴질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이야 어찌 되든 나와 내 부족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지극한 실용주의가 공동체를 갈가리 찢어발겨 해체하고 있다.

이게 우리의 진짜 문제다.

이번 대선이 다른 선거와 구별되는 점도 여기에 있다.

서생의 문제의식은 어느 때보다 희박한 반면,

상인의 현실감각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는 것.

정당 대표, 대선 후보, 극렬 지지자들은 공동체의 미래 청사진을 던지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대신 마녀와 희생양을 지목해 조롱하고 물어뜯는 데 골몰한다.

혐오와 차별이 이 되고 가 된다는 것을, 최고의 가성비전략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막나가도

별다른 사회적 비판이나 제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윤석열 후보가 일관되게 실행한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을 공격하고 청년남성의 결집을 호소하는 세대론과 젠더론의 결합

어쩌면 향후 한국 선거의 트렌드를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변화다.

공당 대표가 해줘라는 여성혐오성 인터넷 밈을 당당히 사용해도,

대선 후보가 공약 자료에서 경찰을 비판한답시고 오또케라는 여성혐오 표현을 명시해도,

심지어 한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사라졌다고 선언해도

지지율에 타격을 입지 않는다면,

아니 오히려 지지율이 높아지기까지 한다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지 않는 쪽이 손해다.

그래서일까, 어느 유명 가수는 상대편 후보 부인을 향한 저열한 외모 품평에다 위대한 팝 음악가에 대한 모욕까지 얹은 신곡을 발표했다.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면 돈이 생기고 표가 나온다.

반면 그걸 비판하고 제재하는 일엔 별 실익이 없다.

되레 “×선비질 그만하라는 욕만 날아올 뿐이다.

나는 요즘 한국에 약삭빠른 상인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서생이다.

언론과 시민 스스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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