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가장 약한 자가 떠받치는 나라

닭털주 2022. 2. 22. 19:00

가장 약한 자가 떠받치는 나라

 

 

초고령화, 노인빈곤, 젠더차별, 이주노동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문제들이 간병노동에 집약되어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조형근 | 사회학자

 

 

또 너무 힘들다 그러네. 만원 올려서 하루 12만원 드리기로 했어.”

처의 말에 한숨이 묻어나왔다.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 장모님을 돌보는 간병인에게서 온 전화였다.

장모님은 건널목에 서 있다가 택시에 부딪힌 오토바이가 덮치면서 발목이 심하게 골절됐다. 어려운 수술이라더니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잘돼서 회복 중이다.

처음 1주일은 처가 간병을 했고, 이후에는 60대 여성 간병인을 썼다.

처도 하던 일인데 간병인은 통화 때마다 힘들다며 푸념을 했다.

결국 만원을 올려달라는 말이었다.

간병인이 힘들다면 장모님 마음도 편치 않을 터. 올려줘야지 별수 없는 노릇이다.

안 그래도 힘든 간병이 코로나19 탓에 더 어려워졌다.

보호자든 간병인이든 한명만 허용된다.

코로나 검사도 때맞춰 받아야 하고, 외출도 사실상 금지다. 감옥살이나 다름없다.

장모님이 입원한 병실은 6인실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간병인까지 열두명이 24시간 부딪히니 자잘한 사건과 사연이 넘쳤다.

답답한 마음에 처는 병상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칼럼 주제로 전전긍긍하는 내게 일지를 내민다. 모두 처가 몸으로 감당한 이야기다.

마음뿐인 내가 글로 전한다.

수술 후 무통주사를 맞는 동안 장모님은 계속 구토를 했다. 다리를 못 쓰자 대소변이 어려워져서 간호사가 처치를 해야 했다. 몸에서 나왔으되 가장 더러운 것들을 받아내고 치우는 일이 계속됐다. 숙련이 필요한 일이라 어떤 간호사는 단번에 처치하지 못하고 장모님을 여러번 힘겹게 했다. 그럴 때면 간호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단다.

처치를 위해 밤새 간호사들이 드나드는 통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간병하는 이들 중엔 가족도 있고 간병인도 있다.

사연을 들어보면 가족 중에는 대개 형편이 어려운 딸이 간병을 맡게 된다.

폐암으로 몇달째 기약 없이 투병 중인 엄마를 돌보던 딸은 어느 아침, 가족이 주고 갔다며 마른 반찬과 귤을 가져왔다. 돌봄을 떠안은 여동생의 고단함을 저 음식들로 퉁치려는 건 아닌가, 처는 문득 부아가 치밀었단다.

마음이 중요하다지만,

돌봄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으로 못하면 돈으로라도 감당해야 한다.’

처가 일지에 써둔 말이다.

간병인은 한국인과 중국동포로 나뉜다.

너무 힘든 일이라 이제 한국인은 소수다.

치매환자를 돌보던 중국동포 간병인이 성품이 조용해 보여 호감이 갔는데, 지저분하다며 한국인 간병인이 험담을 했단다. 온갖 음식과 양념까지 다 챙겨 다니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겠다. 간병인의 세계에도 계급이 있어서 힘든 환자일수록 대개 동포들이 맡는다.

간병비는 한국인보다 1, 2만원 더 적다.

돌봄노동의 가장 낮은 곳에 간병이 있다.

자동화될 수도 없고, 코로나 같은 비상시국에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필수노동이다.

얼마 전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필수노동자의 67.4%가 여성이고, 돌봄 및 보건 서비스의 경우는 93.8%가 여성이다.

필수노동자의 4분의 160세 이상 여성이다.

가난한 여성 노인들의 골수와 뼈를 내놓는 노동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때로 의사보다 간병인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병의 현실이다.

6개월 이상 장기요양 판정을 받아야 적용받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외하면 간병노동은 아직 사회보장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간병인들은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며, 때로 간병비조차 다 못 받는다. 병원비보다 더 큰 간병비 부담에 환자와 가족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가장 약한 가족 구성원이 희생되는 이유다.

초고령화, 노인빈곤, 젠더차별, 이주노동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문제들이 간병노동에 집약되어 있다.

우리 공동체가 함께 부담을 나누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장모님은 며칠 전 우리 동네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새로 온 50대 후반의 중국동포 간병인은 싹싹한데다 머리도 잘 감겨주고 힘이 좋아서 화장실에서 부축도 잘 해준단다. 힘들어요를 입에 달고 살던 이전 간병인보다 한결 낫다며 장모님도 좋아하신다. 병원 옮기며 간병비 지급을 위해 주민번호를 확인하니 60대 초라던 그 간병인은 일흔일곱, 장모님과 동갑이었다.

간병받을 나이에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들다던 하소연이 머리를 맴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다. 가장 약한 자가 떠받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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