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올해 최악의 단어

닭털주 2022. 3. 3. 18:01

올해 최악의 단어

 

손아람 | 작가

 

 

단연 갈라치기. 올해 최악의 단어로 모자람이 없다. 뉴스 검색창에 갈라치기를 입력하고 용례를 살펴본다. 먼저 <경향신문> 기사는 민주당이 갈라치기만 한다는 윤석열 후보의 유세 발언을 소개한다. ‘갈라치기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윤석열 후보가 지금까지 내놓은 말을 종합하면 노동정책은 노동과 기업을 갈라치기하는 것이고(한겨레), 종부세는 국민 2%98%갈라치기하는 것이며(매일경제), 그 외 부동산 정책 역시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치기하는 것이다(뉴시스).

이재명 후보는 유세에서 오히려 윤 후보 쪽이 청년을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치기하고 있다고 맞받았다(세계일보).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정치인도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따르면 페미니즘이야말로 젠더 갈라치기(연합뉴스). 대선 후보만 갈라치기에 예민한 건 아니다. 대선 경선에 신천지가 개입했다는 방송인 김어준씨의 발언에 민주당은 지지자 갈라치기라고 반응했다(조선일보). 체육인들도 질세라 나섰다. 정부가 하나였던 체육을 엘리트 체육과 반엘리트 체육으로 갈라치기했다는 것이다(데일리안). 안철수 후보의 완주를 내심 바라는 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을 갈라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왔다(매일신문). 마침내 부작위형 갈라치기가 등장한 셈이다.

한편 이준석 대표가 발표한 복합쇼핑몰 광주 유치 공약이 광주 갈라치기라고 민주당은 발끈했다(조선일보). 이준석 대표는 전라도에서 나온 젊은 세대의 윤석열 후보 지지율 33%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을 갈라치기한 결과라고 반박한다(뉴시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높은 국정 지지율은 어떻게 해석할 건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에 따르면 그 또한 대통령이 국민을 갈라치기한 증거가 된다(한국일보). 갈라치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당의 백혜련 최고위원은 최근 이준석 대표가 동물과 사람을 편 가르는 갈라치기 신기술을 선보였다며 이 어휘의 의미 지평을 한껏 넓혀놓았다(뉴시스). 다들 서로를 향해 갈라치기를 멈추라는데, 무엇이 갈라치기고 무엇이 갈라치기가 아닌지 오리무중이다. 여기 비밀을 밝힌다. 갈라치기의 원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완벽하게 증명 가능하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가? 이런, 당신은 피타고라스와 나 사이를 갈라치기하는 중이다!

까마득히 잊힌 것처럼 보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사람은 원래 의견이 각기 다르다. 의견은 급진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진실에 가깝거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일 수도 있다. 그건 상대적이지만 다르다는 것 자체는 절대적이다. 다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전쟁이 벌어진다. 벌어져야 한다. 정치가 정의되는 방식이고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이유다. ‘갈라치기를 그만두라는 사람들은 세상이 갈라지는 게 싫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그들 때문에 갈라진다. 생각해보라. 갈라치기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재빠르게 자기 의견을 접었다면 세상은 갈라지지 않았을 게 명백하지 않은가? 하지만 누구도 그럴 수는 없다. 바로 그래서 세상이 처음부터 갈라져 있는 거다. ‘갈라치기를 멈추라는 삿대질 속에서.

세상의 갈라짐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게 악으로 여겨지는 세태다. 우아한 논증과 살벌한 지적 대결은 다 어디로 증발했나? 지적 수치심을 안기고, 의심의 싹을 틔우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결국 변화를 만들어내는 논쟁의 기술들은 실전되어 버렸나? 서로 다른 생각을 겨루며 쌓아올린 정신문명의 수천년 역사는 어쩌다 모든 논쟁이 갈라치기 그만둬. 말은 내가 하고 입은 네가 다물면 평화로울 수 있잖아!”라는 윽박으로 귀결되는 21세기에 도달했나? 이 상황은 악의 일시적 준동보다 더 나쁘다. 갈라짐이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강한 자의 뜻이 관철된다. 유감스럽게도 강자는 악을 실행할 수단을 약자보다 훨씬 더 많이 갖는다.

갈라치기라 불러 마땅한 유일한 무언가는 본래 갈라져야 할 생각의 길들을 통합의 명분으로 틀어막는 행동이다. 그건 인간과 지성 사이를 갈라 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도다. 그러니 앞으로 갈라치기운운하는 사람을 만나면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문장을 사용하여 지능이란 것의 경험에 동참하라고 권유하자. “난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