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무사, 성직자 그리고 대통령 선거

닭털주 2022. 3. 9. 13:28

무사, 성직자 그리고 대통령 선거

 

이원재 | LAB2050 대표

 

 

이번 대선 마지막 티브이(TV) 토론의 입씨름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그러면서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로버트 케네디가 했던 연설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우리의 국민총생산은 공기 오염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치우는 구급차를 성장으로 측정합니다. () 네이팜탄과 핵무기와 시위 진압용 장갑차도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 하지만 국민총생산에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 시의 아름다움도, 결혼의 건강함도, 공적 토론의 지적 수준도, 공직자들의 청렴도 역시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지표입니다.”

 

그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야말로 대통령 선거에서 나누어야 할 이야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당시의 국민총생산은 국가가 사회를 평가하는 대표적 기준이었다. 지금은 그것과 비슷한 국내총생산(GDP)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평가 기준을 바꾸면 관점이 바뀌고, 이에 따라 정책이 바뀐다.

로버트 케네디가 국민총생산 비판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유다.

관점을 이야기하면 비전과 정책이 자연스레 따라 나온다.

우리의 대선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비전은 사라지고 도덕성과 복수심이 선거의 중심 주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선은 복수의 칼을 휘두를 무사를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다.

숭고한 도덕성을 가진 성직자를 뽑는 과정도 아니다.

대선은 토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구성하는 과정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복수심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관점과 정책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우리는 대통령의 관점을 정한다.

각 후보는 핵심 사안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 뒤, 공론장에서 토론하며 겨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선거에서 공약과 연설과 토론으로 공론화된 관점을 토대로 국정과제를 도출한다. 그 과제들을 각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이 받아 실행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그런 관점을 충분히 토론했는가? 토론이 정책에 반영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구조적이다.

지금처럼 1등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선거제도 아래서 다양한 관점이 토론되기는 쉽지 않다. 낙선한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의 관점은 모두 사라지게 되니, 시간이 갈수록 1~2등 후보로 쏠린다. 과반을 득표하기 위해서, 후보들은 명확하게 관점을 드러내는 대신 자신의 대표 정책을 후퇴시키며 관점을 숨기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그 자리를 채운다. 승자 독식의 선거에서는 상대방을 깎아내릴수록 유리하다.

대조적인 사례가 독일이다.

독일은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며 연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제도를 운용한다.

이번 정부는 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당의 연합정부다.

세부적인 정책 협의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총리와 장관 자리를 나누어 맡아 실행도 책임진다. 연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으니, 선거 과정에서도 상대방을 깎아내리기보다는 자신의 관점과 정책을 알리며 토론할 동기가 생긴다. 또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한 정당이 장관 자리를 맡아 정책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며 효능감을 느낀다.

 

미국은 양당제 중심의 정치제도를 갖고 있지만,

민간 싱크탱크 생태계를 통해 이를 보완한다.

워싱턴 디시(DC)에는 다양한 성향의 민간 싱크탱크가 일상적으로 정책을 토론하며, 해당 정책을 채택하는 정부가 탄생하면, 직접 참여해 정책을 실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떨까?

매번 후보 개인에게 매달려 온갖 희망을 가졌다가 좌절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번 선거에서도 단일화와 사퇴 소동이 몇 차례 벌어졌다.

후보들 개인은 합쳤지만,

서로 전혀 다르다며 열심히 토론하던 관점과 정책도 합쳐진 것일까?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점과 정책을 두고 투표하려던 유권자들은 허탈하다.

물론 정치인 탓만은 아니다.

독일식이든 미국식이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제도 마련 이전에라도, 통합정부를 통해 다양한 정당이,

결국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우리의 대선이 더 이상 무사나 성직자를 선출하는 의식은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