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궁예와 아Q

닭털주 2022. 4. 1. 12:55

궁예와 아Q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Q라는 캐릭터가 있다. 루쉰(魯迅)이 지은 <Q정전>의 주인공으로 특유의 정신승리법으로 꽤 유명하다. 정신승리법이란 예컨대 이런 식이다. 동네 꼬마들이 돌팔매질을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한 채 집에 와서는 할아버지 같은 이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것에게 당했다고 인간인 내가 화를 내서야 되겠나?’ 하면서 씩 웃으며 일어선다. 이유 없이 돌을 맞았지만 이긴 자는 결국 자신이 된다.

어떤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극강의 멘털갑이다.

누가 얼굴을 때리면 얼굴로 막고 배를 때리면 배로 막으면 될 따름이다.

그렇게 버텨낸 다음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면 승리는 내 것이 된다.

상처뿐인 승리인 게 걸리지만 멀쩡한 실패보다 낫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니 맷집만 있으면 걱정할 게 없다. 육체의 맷집은 물론이고 아무리 처참할지라도 자위할 수 있는 정신의 맷집을 갖추면 아Q를 꺾을 이는 세상에 없다.

극강의 멘털갑 하면 궁예도 만만치 않다.

실존 인물 말고 신채호의 소설 <일목대왕의 철추> 속의 궁예 말이다.

궁예는 소원을 들어주되 그 소원의 두 배를 다음 사람에게 이뤄준다는 불상 앞에서 자기 눈 하나를 멀게 해달라고 빈다. 그래야 뒤이어 소원을 비는 벗의 두 눈이 모두 멀기 때문이다. 남을 더 불행하게 할 수만 있다면 내게 적잖이 손해가 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강인한 정신력! 여기서도 정신승리법의 위대함이 목도된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궁예는 아Q와 달리 자기 행복을 위해선 얼마든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저 루저일 뿐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줄도 안다. 물론 그러한 궁예조차 아Q는 너끈히 이겨낸다. 궁예가 자기 행복을 위해 제아무리 괴롭힌다 한들 그 또한 정신승리로 극복하면 될 뿐이다.

 

Q, 궁예들이 함께 사는 사회는 어떠할까?

당연히 궁예들은 군림하는 위치에 있고 아Q들은 부려지는 자리에 처할 것이다.

이 사회의 행복지수는? 틀림없이 높을 것이다.

궁예들이 행복해하는 건 당연할 터이고 정신승리법 덕분에 아Q들도 행복해할 것이다.

물론 궁예와 아Q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있을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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