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앞서가는 즐거움의 역설

닭털주 2023. 2. 15. 22:23

앞서가는 즐거움의 역설

입력 : 2023.02.15 03:00 수정 : 2023.02.15. 03:03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즐거움 하면 주로 기쁨, 쾌락 등이 떠오른다. 덕분에 즐거움은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즐거움을 유발한 것이 마약이라도 이를 긍정할 수 있을까?

 

경쟁은 또 어떠한가? 즐거워진 이유가 경쟁이라면 이를 두고 좋다고 할 수 있을까?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기에 던져본 물음이다.

경쟁이 즐거움을 안겨준다면 그건 경쟁 자체를 즐긴다는 뜻이다.

경쟁 결과와 무관하게 경쟁하는 것만으로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가느냐, 뒤처지느냐에 상관없이 경쟁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걸렸을 때도 이러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경쟁이 즐거웠다면 십중팔구 그 결과가 이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논어>의 첫 구절이다.

대개 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곤 한다. 공자가 한 말이기에 그런 게 아니라 배우면 실제로 이로울 때가 많기에 그러하다. 경쟁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가 먹고살아감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경쟁 자체를 즐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쟁 결과가 좋기에 그것을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앞서가는 즐거움이라는 말도 그래서 표방되었을 것이다.

경쟁 결과 남보다 앞섰고 그것이 이로웠기에 즐거워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이는 남보다 뒤짐이 하나라도 있으면 즐겁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10, 100명 아니 1000, 1만명보다 앞서도 나를 앞서는 이가 단 1명이라도 있게 되면 우울해진다. 자신이 지닌 것이 훨씬 많고 좋음에도 1등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로 침울해한다.

잘하면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음에도 잘할수록 불안해하고 자신을 옥죄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즐거움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녀야 마땅할 것처럼 상찬된다. 어려서부터 남보다 앞서감을 즐거워하는 아이의 삶은 안중에 없다는 태도다.

행여나 뒤처질까 싶어 늘 경쟁 속에 매몰되는 삶이 즐거울 수 있을지, 즐겁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 즐거움일지, 이러한 물음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앞서가는 즐거움에 중독된 아이는 경쟁이 자신을 노예처럼 부리는 삶 속에 자신의 하나뿐인 인생을 갈아 넣는다.

즐거움이라고 하여 다 좋은 것이 결코 아니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