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말 많은 거짓말쟁이 챗GPT, 침묵의 의미를 알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인공지능이 인간 언어에 육박할 수 있게 된 건
인간이 말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패턴의 발견.
패턴은 반복적 사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정한 양식이자 경향.
어떤 상황을 말로 표현한다고 해 보자.
딱 맞는 하나의 표현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대로 열려 있는 것도 아니다.
‘밥’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떠올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패턴의 조합이다.
패턴은 유일과 무한대 사이에 난 오솔길.
자기 팔꿈치는 물지 못한다 했던가.
인간은 그 패턴이 무엇인지 소상히 알 수 없다.
말은 술술 하지만 그걸 보여 달라고 하면 난처해진다.
인공지능은 그걸 빠르게 발견한다.
이 단어 다음에 어떤 단어가 올지, 이 문서가 뭘 다루고 있는지를 안다.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처럼 그럴싸하게 말을 하게 되었다.
말을 뿜어내도록 만들어진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는
다변증과 허언증을 동시에 앓고 산다.
말 많은 거짓말쟁이. 끝없이 지껄이고, 수시로 거짓말을 한다.
대꾸하지 말래도 기어코 대답을 한다.
그래도 끊임없이 쏘삭이는 인공지능을 다들 기특하고 대견해 한다.
아이야, 너는 어찌 그리 말을 잘하니?
인공지능이 유일하게 못 하는 것은 침묵.
이제 인간에게 남은 거라곤 패턴을 거역할 자유와 입을 닫을 자유 정도밖에 없는가.
인간만이 기성화되고 제도화된 패턴을 벗어나는 시도를 감행한다.
인간만이 할 말을 참고 침묵할 수 있다.
상황과 상대를 살피며 망설이고 뜸을 들일 수도 있다.
나처럼 입만 살아 있는 자는 성능 나쁜 인공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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