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닭털주 2023. 7. 29. 10:59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입력 : 2023.07.29. 03:00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지난 5월 홍세화 선생이 강릉에 왔다.

내가 문을 연 서점 당신의 강릉의 첫 행사는 그를 모시는 것이었다.

교사는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교사인 이원재 작가도 함께 강원도 지역의 학생, 학부모, 교사 등과 만났다.

그는 바다를 보고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돌아갔다. 얼마 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엊그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에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새 교육부 장관에 34살의 청년 가브리엘 아탈이 기용됐습니다. 그는 동성결혼자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요.”

 

강릉에서 진행했던 북토크에서 청중이 이원재 작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40살 이원재 작가는 답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대학 서열화를 멈추고 학제에 따른 n분의 1로 재편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의 재편보다도 40살 평교사 이원재씨의 교육부 장관 임용이라는 것이 더욱 요원할 일이 아닐까.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그럴 리가 없는 일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말들을 꺼내는 것은 가볍고 쉬운 일이다.

 

, 선생님. 34살 청년이 교육부 장관이라니요. 저희가 그날 농담처럼 했던 39살 이원재 선생 교육부 장관론이 저기에서는 현실이 됐네요.”

 

홍세화 선생이 이번에는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언젠가 찍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이라고 했다. 나는 외국의 해변을 본 일이 없어 기대했던 것처럼 물의 색이 예쁘지도 않고 해변의 경관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강문해변, 안목해변, 집 근처의 해변이 노르망디보다 낫다는 걸 알았다.

 

해변에서 책 읽기: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 ‘La Veules les Roses’(뵐르 강변의 장미 마을) 풍경입니다. 제 눈을 끈 것은 해변에 설치된 임시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 청년, 어른의 모습이었어요.”

 

그 별것 없어 보이는 노르망디 해변의 좋은 자리에는, 간이 도서관 같은 것이 있었다.

컨테이너 두어 개를 붙여 만든 것처럼 볼품없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그 앞 마당에서 햇볕을 쬐면서 캠핑의자 같은 데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해변에 카페나 술집이나 편의점이나 횟집 말고, 도서관이라는 게 있구나. 그리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책이라는 것을 읽는구나.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엔 도서관이 있다.

내가 굳이 책을 싸 가지 않아도 해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굳이 도서관을 찾아가야 하고 그나마 있는 도서관에 대한 지원도 줄이겠다는 목소리가 늘 들려오는 나라. 그러나 사람들이 몰릴 만한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임시로라도 도서관을 설치해 사람들에게 읽을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자연스레 만들어 두는 나라가 있다. 나는 홍세화 선생에게 저게. 선진국이군요하고 답했다.

 

강릉에 살며 해변에 자주 간다. 바다는 예쁘고 해변에선 필요한 무엇이든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읽는 해변이란 네이밍을 상상해 본 일은 없었다.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 짓고 책을 가져다 두고 사업으로 소개하고, 그런 것 말고, 어느 해변에 가든 작은 임시도서관이 있어 거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빌려 읽는 일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됐으면 한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책이 있으면 좋겠다.

읽고 안 읽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어디에든 책이 있는 환경을 조성해 두는 게 선진국이고 선진도시 아닌가.

그래야 평교사 출신의 30대 교육부 장관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가 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