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한가위에 ‘공동체형 학교’를 꿈꾼다

닭털주 2023. 9. 28. 09:04

한가위에 공동체형 학교를 꿈꾼다

 

조희연 | 서울시 교육감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열린 저경력 교사 간담회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쏟아졌다. 학생들에게 애정을 표하려 손을 잡거나 하이파이브하는 것도 학부모에게 정서적 학대라는 항의를 받을까 우려해 지레 포기한다고 했다.

선배 교사들이 후배 교사들에게

“(학생 지도를) 최소한만 해라

건조하게 대하라

문제행동에 개입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일부 학부모가 작은 일에도 공격적으로 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금쪽이 같은 내 새끼가 워낙 소중해서, 교육 환경이 안전하지 못해서, 가끔 들려오는 학교폭력과 아동학대 소식 때문에 교사에게 거칠게 항의한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만든 법 조항을 교사 공격에 악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교사들이 정당한 교육과 생활지도마저 포기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학부모의 일견 합리적행동이 비합리적결과를 낳는 것이다.

 

,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학부모들에게 호소한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교육계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인데, 새삼스레 되새겨 본다.

교사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수업할 권리를 보장해야, 교사의 권위와 교육권을 온전히 보호해야, 자녀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에 이어 민주화 시대를 거쳐왔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됐고, 개인의 이익 추구마저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 아래 경시되곤 했다.

민주화 시대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최고의 가치가 됐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각종 법과 제도도 발전했다. 고압적인 관()도 국민에 복무하는 기관이 되도록 개혁을 요구받았다. 과거에는 주눅 든 국민처럼 살았다면 이제는 모두가 당당해졌다. 때로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주눅들지 않고 싸우는 전투적 인간상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민주화 시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민감성, 심지어 그 전투성까지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그 바탕 위에서 공동체형 학교 혹은 공동체형 사회를 만들 것인가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됐다.

학교를 흔히 균일한 조직으로 여긴다.

하지만 학교는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돼 있으며, 크고 작은 균열도 있다.

교사뿐 아니라 관리자 격인 교장, 교감이 있고, 행정실에는 실장을 포함한 다양한 직원이 있다. 공무직 직원도 있다. 공무직은 민간기업의 비정규직과 달리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보장돼 있다. 공무직 직종 역시 민간기업과 달리 50~60개로 아주 다양하며 노동조합이 잘 조직돼 있다. 교사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학교 급별로 다르며, 가르치는 과목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이는 한편 다양성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갈등을 낳는 균열이 된다.

작은 일의 분담을 놓고 일상적인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집단적인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학교 밖 사회 곳곳에서도 당당한 개인들이 전투를 벌인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여러 주체들의 권리가 상호충돌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각종 법제도가 악용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법이 내새끼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학부모에 의해 교권 침해로 이어지는 세태는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오랜 독재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했고, 그 결과 자유와 권리의 확대가 절대 선()이라 여기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나의 자유와 권리를 향한 행동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혹여 침해할 수 있다는 점, 내 자유와 권리가 공동체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우리는 오랜 노력 끝에 뿌리내린 민주적 학교 원리를 지키는 가운데 한발 더 나아가 공동체적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본시 학교는 교육을 목표로 함께 협력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구성원 모두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는 가운데에서도, 그 핵심에 교사의 정당한 권위, 그리고 교육권이 철저히 보장되는 공동체적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2023718일 서초구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매주 수만, 수십만 교사들이 학교의 대전환을 요구하며 절규했다. 지난 921일에는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른바 교권보호 4의 개정안이 통과됐다. 아울러 교육부 차원의 학교생활지도에 대한 고시’, 교육청 차원의 교원 법률소송에 대한 지원, 민원 대응 체제 강화 등의 다양한 대책이 마련됐다. 교사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이뤄낸 거대한 변화다.

이제 한 매듭이 지어진 셈이다.

이 매듭이 교사들이 진정 가르칠만하다 느끼는 새로운 공동체형 학교로 이어지도록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가위에 새로운 공동체형 학교와 사회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