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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대한민국

닭털주 2023. 12. 14. 21:11

늙어가는 대한민국

입력 : 2023.11.29. 20:22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44세이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나이 순서로 세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을 의미하는 중위 연령은 이보다 한 살 많은 45세이다.

그런데 2002년 한국인의 중위 연령은 31.8세였다.

2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위 연령이 13년 정도 높아진 것이다.

아마도 출산율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증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전체 수준에서 나타난 변화라는 면에서 대단히 급격하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대체로 주변의 환경변화를 수용하는 정도가 떨어진다.

사람들은 10, 20대에 얻은 경험, 가치관, 문화 속에서 이후 생애를 살아간다.

30세 이후에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일본이 한국보다 사회의 디지털화 수용 정도가 전반적으로 늦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이유를 일본이 한국보다 사회 고령화 상황을 일찍 맞은 것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일리가 있다.

 

사회의 노화가 사회 구성원의 노령화만 뜻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지속되면서 나타나게 마련인 기득권 집단의 형성이야말로 사회적 노화의 핵심이다. 사회의 기득권 형성은 사회의 건전성 유지에 필요한 공정한 경쟁의 질을 떨어뜨린다.

노화가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정상적 소멸과 건강한 재생이 어려워지는 것을 뜻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가장 극적인 개혁이 세금 개혁 대동법(1651)이다.

세금과 복지 분야 개혁은 지금도 어느 나라나 정권을 걸어야 가능하다.

개혁을 성공시키고도 그 대가로 권력을 잃기도 한다.

대동법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 하나의 세금개혁이 균역법(1750)이다.

흥미롭게도 100년 간격으로 이루어진 두 개혁의 양상은 늙어가는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동법 실시가 결정되었을 때 좌의정은 조익, 우의정은 김육이고,

균역법 성립 당시 영의정은 조현명, 좌의정은 김약로였다.

조익과 김육은 자신의 역량과 소신으로 대동법을 추진했고, 결국 개혁에 성공했다.

대동법 성립 시 재위했던 효종(孝宗)이 개혁을 추진했던 것은 아니다.

반면에 조현명과 김약로가 조정에서 개혁을 이끌었던 것은 아니다.

균역법을 추진했던 사람은 당시 임금 영조(英祖)였다.

흥미롭게도 개혁이 이루어지던 당시 조현명과 김약로는 조익, 김육보다 나이가 10여세나 적었다. 풍양조씨 조현명과 청풍김씨 김약로의 집안은 조익이나 김육의 집안보다 훨씬 힘이 있었다. 김약로의 형과 동생 역시 정승과 판서를 지냈다. 정도는 달라도 조정에서 이들 집안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세도가문들의 카르텔인 세도정권은 갑자기 등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 집안으로는 영광이었겠으나 그것은 조선이 늙어간다는 신호였다.

 

입시철이다.

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에는 지방 출신 대학 입학생 수가 서울 출신보다 많았다. 자기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온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취직하고 출세해야 한다는 마음도 적지 않았지만,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도 마찬가지로 높았다.

자연히 대학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개혁적이었다.

한국장학재단 조사에 따르면 이미 2014~2016년에 상위권 대학들의 저소득층 학생이 10% 정도인 데 반해, 소득 최상층 출신 학생은 70%가 넘었다.

소득과 학력 사이의 밀접하고 강력한 관계를 보여준다.

대학이 이미 사회 기득권 집단의 재생산 기지로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노화의 최후가 죽음이듯 기득권의 지나친 강화는 사회 붕괴를 가져온다.

하지만 노화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누구의 잘못이 아니듯, 어떤 면에서 사회 기득권 형성도 비슷하다.

다만 노화는 되돌릴 수 없지만, 사회적 기득권 수준의 추이는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대단히 어려울 뿐이다.

역사에 나타났던 수많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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