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MBTI

닭털주 2024. 6. 27. 08:49

MBTI

입력 : 2024.06.26 20:34 수정 : 2024.06.26. 20:36 장동석 출판평론가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T?”

그들은 하나같이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답한다.

“T 맞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T(Thinking)형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진실과 사실에 관심이 많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심지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풍문으로 들은 T의 반대 성향은 F(Feeling)라는데, 사람과 관계에 관심이 많고, 공감 잘하고, 주관적 판단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등등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MBTI 검사 역시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T형 인간인지, 아니면 F형 인간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대문자 T’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

 

알베르 카뮈가 1942년 발표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문제적 인물이다.

유일한 혈육인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양로원 수위가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이미 못을 박아둔 관 뚜껑을 열어주겠노라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는 수위를 말렸다. 모정이니 슬픔이니 하는 마음은 뫼르소에게 애초부터 없었다. 이 이야기까지만 듣고 뫼르소는 T형 인간이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뫼르소는 과거 한 직장에 다녔던 마리를 만나 코미디 영화를 함께 보고 해수욕을 즐겼다. 사랑도 나눴다. 엄마의 장례식을 마친 직후의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뫼르소는 F형 인간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TF 사이 어디쯤에 뫼르소가 존재하지 않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뫼르소는 후대 평론가들에 따르면 부조리한 세계를 사는 부조리한 인간,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의 현현(顯現)이다.

모든 사람이 TF, 혹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196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출신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는 가상의 중남미 국가에서 자행된 독재의 잔혹함과 신음하는 민중의 삶을 그렸다.

각하는 아무도 믿지 않는, 또 아무도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 각하의 심복 미겔 카라 데 앙헬만큼은 각하를 믿고 따랐다. 그런 앙헬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각하의 정적 에우세비오 카날레스 장군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냉철한 T형 인간인 앙헬은 장군을 지능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장군의 딸 카밀라를 처음 본 순간, 그는 F형 인간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카밀라를 돕고 싶은 마음이 어느 틈엔가 생겼고, 한편에서는 몸과 마음을 모두 소유하고 싶은 충동이 불 일 듯 일어났다.

각하의 심복으로서 해야 할 일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뫼르소처럼 앙헬 역시 TF, 혹은 그 사이에서 맴도는 인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MBTI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성향을 잘 파악하면 함께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 십분 이해한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갈대이되 생각하는 갈대 아니던가.

그런 이들을 하나의 성향으로 묶어버리는 순간,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침소봉대하자면 아()와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세상의 출현은 거기서 시작된다.

사족처럼,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내게도 대문자 F’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