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은 상호 착취다
입력 : 2024.07.31 20:38 수정 : 2024.07.31. 20:49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어린 시절에 이런 학습 만화를 읽었다. 개미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진딧물에게 말한다.
“뭐? 너희들의 천적 무당벌레가 나타났다고? 내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
식물의 즙액을 빨아 먹는 진딧물은 다 소화하지 못한 당분을 배설물로 내보낸다.
“친절한 개미야. 고마워! 나도 맛있는 감로를 내줄게.”
진딧물은 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개미는 진딧물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개미와 진딧물이 활짝 웃으며 만화는 끝난다.
두 생물종이 혜택을 주고받는 상리공생(mutualism)은 자연계에 흔하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벌과 나비에게 꽃가루를 이 꽃 저 꽃 옮겨주는 답례로 꽃꿀을 준다. 콩과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에게 공기 중의 질소를 잡아주는 답례로 영양소를 준다. 산호초는 조류에게 광합성 산물을 받는 답례로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그뿐인가.
우리 몸의 세포마다 들어 있는 건전지인 미토콘드리아는
20억년 전 어느 세균이 진핵세포의 조상 안에 들어와 협업을 개시한 결과다.
학습 만화에서는 동업자들이 진심으로 상대의 이득을 위해 애쓰는 것처럼 그린다.
과연 그러한지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개미가 생각을 한다면, 개미는 자신이 진딧물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할까?
개미는 그저 진딧물의 감로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딧물은 그저 개미의 보호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각자 자신의 진화적 이득을 높이기 위해 상대를 이용할 따름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상리공생은 이타적이지 않다. 상리공생은 상호 착취다.
상대를 돕느라 들인 비용을 초과하는 이득을 각자 상대로부터 뜯어내는 과정이다.
상리공생하는 두 생물종이 과연 서로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한다고 일컬을 수 있는가는 찰스 다윈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다윈은 <종의 기원> 6장에서
어떤 종의 형질이 오로지 다른 종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졌음이 입증된다면 “내 이론은 완전히 박살 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형질은 자연 선택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다윈은 꽃의 정교한 구조는 벌과 나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식물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게끔 진화했음을 자세하게 논했다.
상리공생은 상호 간의 착취라는 다윈의 이론적 토대 위에 지난 160여년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은 흥미로운 발견을 높이 쌓아 올렸다.
상리공생하는 양측 모두 비용은 적게 쓰면서 상대로부터 이득은 많이 얻게끔 선택된다.
한쪽이 치른 비용은 다른 쪽이 얻는 이득으로 전환이 되기 때문에 갈등이 벌어진다.
예컨대, 식물과 벌은 꽃 하나에 들어가는 꽃꿀의 양을 두고 의견이 대립한다.
식물은 꽃꿀을 적게 주려 한다. 벌은 꽃꿀을 많이 받으려 한다.
어긋난 진화적 이해관계 때문에 종종 상리공생은 기생이 된다.
어떤 종의 벌은 꽃꿀을 너무 적게 주는 식물종을 아예 패스해 버린다.
어떤 종의 식물은 근연종의 식물이 만드는 꽃과 겉보기엔 비슷해도 꽃꿀은 일절 넣지 않은 꽃을 피우고
벌들이 실수로 방문해주길 기다린다.
식욕보다 강한 것은 성욕이라 했던가,
암컷 벌을 꼭 닮은 꽃을 피우고 수컷 벌을 농염하게 유혹하는 난초도 있다.
상리공생하는 두 생물종이 상대로부터 얻는 순 이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양측 모두 상대를 배신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싫든 좋든 한눈팔지 않고 상대방과 협력하는 편이 자신에게 최선의 길이기 마련이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대손손 함께 전달되는 핵 유전자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사이의 세포 내 공생이 그 좋은 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진화적 이해가 완전히 겹치진 않기 때문에 유전적 갈등이 벌어진다.
생물종은 서로를 내쫓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한 발짝씩 양보해서 공존하도록 진화했다는 린 마굴리스의 공생 이론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다.
리처드 도킨스는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에서 모든 생명을 일종의 상호부조 공동체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틀렸음을 지적한다.
각 개체는 생태계 전체의 이득을 높이게끔 진화하지 않았다.
각 개체는 오로지 자신의 진화적 이득을 높이게끔 진화했다.
개미는 진딧물의 감로를 오래도록 얻기 위해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를 물리친다.
덕분에 진딧물은 보호를 받지만, 이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인간 사회에 공생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끌어내기 위해
자연에서 모든 생명이 진정으로 상부상조한다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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