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백수는 미래다!

닭털주 2024. 8. 19. 11:44

백수는 미래다!

입력 : 2024.08.18 20:37 수정 : 2024.08.19. 10:26 고미숙 고전평론가

 

 

#1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이 어려웠다. 대기업, 언론사같이 잘나가는직종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책도 읽고 저자들도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출판계를 지망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간신히 꽤 규모 있는 출판사에 들어갔다. 경제적 자립은 가능했으나 업무가 너무 지루하고 따분했다. 결국 8개월 만에 때려치고대학원에 진학했다.

 

#2 대학을 졸업하고 잘나가는회사에 들어갔다. 20대에 연봉 5000만원을 받을 정도로 성공한 청춘이었다. 문제는 회사가 잘될수록, 능력을 인정받을수록 야근이 잦았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출구를 찾고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고 글쓰기를 하면서 마침내 내면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죽고 싶어요!” 결국 청년은 퇴사했다.

 

#1의 청년은 40년 전의 .

#2의 청년은 현재 남산강학원에서 활동하는 30대 학인이다.

40년 전의 가 원했던 건 세 가지 - 경제적 자립과 지적 성장, 사회적 연결망 였다.

요컨대, 돈과 공부와 사람. 출판사라면 가능할 줄 알았는데, 현장은 영 딴판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뒤의 두 가지는 해소되었지만, 이번엔 돈이 문제였다.

각종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가 되면 세 가지가 두루 해결될 거라 기대했지만 교수직 진입에 실패했다.

대졸백수에서 박사실업자가 된 것.

바야흐로 삶 전체를 리셋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선택한 경로가 수유연구실이라는 지식인 공동체였다.

일단 지적,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면서 경제를 해결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때의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그때 돈만 좇아갔다면(그런 길이 있을 리도 없지만),

지금쯤 깊은 공허와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여, #2의 청년이 죽고 싶다고 울먹였을 때

나는 그 먹먹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1의 청년과 #2의 청년 사이엔 40여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그사이에 산업기술은 눈부시게 도약했고, 우리나라는 마침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럼에도 삶의 패턴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청년들에게 주어진 경로는 자립과 성장과 연결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그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방황하게 되면? 백수가 된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그냥 쉬는대졸자들이 4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그냥 쉰다는 건 취업을 못했지만 취업을 위해 애쓰지도 않는, 자발적 백수라는 뜻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여러 이 난무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서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 논평인 듯하다.

그럼 양질의 일자리란 대체 무엇일까?

고액연봉과 복지혜택?

하지만 #2의 청년이 말해주듯 그런 직종은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한다.

일종의 극한 직업이다. 거기에서 성장과 관계망의 확대는 요원하다.

이 말이 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재미와 의미로 바꿔도 좋다.

누구든 돈도 벌면서 보람도 느끼는, 즉 경제활동을 통해 인간적 성숙과 사회적 공감의 확장이 가능한 그런 직장을 원하지 않을까? 그런 직장이 어디 있냐고?

당연히 거의 없다.

왜냐하면, 지금껏 산업 시스템이 그런 일자리를 비전으로 삼은 적이 없으니까.

이 어려운 시대에 배부른 소리 한다고? 그럼 묻고 싶다.

언제쯤이면 그런 노동의 형식이 가능해지는지를.

거기에 답할 수 없다면 앞으로 더 많은 청년들이 백수가 되어 길 위를 떠돌게 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디지털 문명은 바야흐로 노동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왜 이런 시대에 산업화, 민주화 세대처럼 뼈빠지게일하고 죽도록돈을 벌어야 하는가?

돈을 위해 삶을 소외시킨 채 뭔 영광을 보겠다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성공과 부를 거머쥔 이들, 소위 상류층이 얼마나 공허와 불통,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그럼에도 왜 여전히 청년세대를 그 뻔하고 서글픈길로 내모는가?

 

지금이야말로 내가 40년 전 꿈꾸었던 세 가지 - 자립과 성장과 연결 - 를 위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활동을 창안하고, 마침내 노동이라는 굴레자체로부터 벗어나는 삶의 형식,

이를테면 1980년대에 목놓아 외친 노동해방21세기적 비전은 바로 거기에 있을 터,

단언컨대 이런 비전은 자발적 백수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고로 백수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