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선입견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말에 잘 속아 넘어가는 편이다. 가게 채소 칸에 ‘밤고구마’라 적혀 있으면 분명 당근인데도 ‘햐, 밤고구마가 발그스레한 게 맛있어 보이는군’ 하고 속는다. 어제는 아들이 가으내 해바라기씨를 말려 투명 비닐봉지에 넣어 왔는데 하필 겉에 ‘취나물말림’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걸 보고, ‘말린 취나물이 씨앗처럼 생겼군’ 하며 얼토당토않은 추측을 했더랬다. 말에 속아 판단을 그르치는 것보다 나를 더 좌우하는 건 선입견이다. 선입견은 머리보다는 몸의 기억에 가깝다. 아버지는 각자가 경험한 아버지다. 같은 쥐래도 들쥐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다람쥐는 웃음이 나온다. 바퀴벌레는 4억년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과학자들에겐 관심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