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 잔소리 줄이는 법... 우리 아이들이 바뀌었다
학급신문 만들었더니 생긴 일... 주변상황에 관심 갖고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
23.11.19 14:05l최종 업데이트 23.11.19 14:05l 이유미(yumi05)
▲ 아이들의 땀방울로 만든 학급신문,당분간 우리반 잔소리꾼.
ⓒ 이유미
바쁜 일상 속 글쓰기 갈증을 어떻게 해갈해볼까 생각하던 차 내게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 방법을 찾았다. 바로 나의 주일터인 학교에서 주어지는 국어시간, 4학년 2학기 국어시간은 유독 글쓰기 단원이 많다.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손도 아픈 글쓰기. 아이들에겐 한숨을 내게 하는 것이지만 내겐 기분좋은 날숨을 내게 해주는 것이다.
1교시 국어 5단원 2차시의 목표는 생활 속 문제상황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글쓰기.
아이들에게 생활 속이라는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라
학교 속 문제상황으로 정해주고 시작했다.
"얘들아 요즘 우리 교실 속 문제 상황은 무엇이니?"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영어시간에 늘 고성을 지르는 짝꿍때문에 고막이 아프다는 00이가 뾰로통하게 말한다.
"영어시간에 게임하다 고성을 지르는 문제가 심각해요. 귀가 너무 아파요."
그 말에 짝꿍인 00이는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을 붉히며 "내가 언제" 라고 큰소리로 맞받아친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우리반에서 발표를 제일 잘하는 00이가 배턴을 이어 "계단에서 뛰는 것이요"라고 말한다. 얼마 전 반아이 두명이 계단을 뛰어올라오다 넘어져 계단에 머리를 박은 사건을 언급하며 심각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 이후로도 아이들은 이어달리기를 하듯 다음타자가 되어 문제상황을 열심히 늘어놓기 시작한다.
"얘들이 지금부터 너희들은 1반 기자야. 방금 말한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상황에 대한 너희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한 편의 기사문을 한 번 써볼까?"
막막했던 아이들의 눈빛, 이렇게 바뀌었다
기사라는 말에 아이들은 막막하다는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이럴 땐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내가 올린 기사 중 많은 댓글 세례를 받았던 '옷안사기 7일챌린지'를 예시로 보여주고 시작했다. 선생님은 저 기사를 쓰고 나서부터 기사에 책임감을 느껴 그전보다 옷을 덜 사고 있고 지금껏 잘 실천해오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그말에 아이들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깃든다. 너도 나도 선생님처럼 기사를 쓰고 싶다며 앞다투어 손에 연필을 쥐기 시작한다.
기자라는 타이틀에 사명감을 가진 아이들은 집중해서 저마다의 의견과 해결방법을 열심히 써내려간다. 자신의 바운더리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보니 눈을 반짝이며 몰입해서 쓴다. 단숨에 아이들의 왁자한 말소리가 딱딱 연필소리로 바뀐다. 몇 분이 지나자 하나둘 땀방울이 묻은 자신의 기사를 두손에 꼭 쥐고 내게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편집기자가 돼 예리한 눈으로 훑어보며 의견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다시 써오라 지시하고 내용이 부실허면 좀 더 생각의 살을 덧붙이게 했다. 아이들은 분주히 교탁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내게 검열을 받고 수정을 거듭한다. 몇 번의 수정 끝에 오케이 싸인이 나자마자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뿐한 발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완성된 기사를 모둠별로 합쳐 하나의 학급신문을 완성해낸다.
완성된 학급신문을 들고 뿌듯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더듬어본다. 수건을 쥐어짜듯 생각을 짜내 한편의 글을 완성한 뒤의 쾌감이란. 글을 쓰는 과정은 조금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완성된 글을 보는 맛에 그 고통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졌었다.
글을 쓰고 나선 그 글에 대한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져 글에 쓴 다짐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글쓰기가 내 행동을 반추하게 만들고 다시금 좋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치료제의 역할도 톡톡히 했었다. 옷에 대한 기사를 내고 한동안 단벌신사로 살아왔고 개수대에 무심코 던진 달걀껍질에 대한 기사를 내고 그 이후 음식물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학급신문 발표의 시간. 웅변대회를 연상케하는 아이들의 힘있는 발표에 교실은 금세 달아올랐다. 27개의 기사 중 단연코 요즘 우리반 화두인 수업시간에 고성지르는 문제에 대한 기사가 압도적이었다. 저마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수업시간에 고성을 지르는 문제가 왜 심각하며, 어떤 피해를 주는 지에 대해 연설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수업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친구들이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워 5학년가서 이해를 할 수 없다' 등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쓴 글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해결 방법도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입장을 생각해서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지르는 것을 스스로 줄이자',
'잘 고쳐지지 않는 학생에겐 벌점제도를 적용하자. 반성의 글쓰기를 하자'
등의 의견이 나왔다.
자신들의 피부로 와닿는 문제다 보니 꽤 진지한 내용의 글들이 많았다. 아이들 스스로의 머리에서 나온 해결방법에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이들은 글을 쓰고 발표를 하며 우리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잔소리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보니 자신의 글에 책임감을 느껴 몸소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마지막 소감 발표 시간. 반 친구들 사이에서 작가로 인정받는 눈이 큰 00이는 "선생님 글을 쓰다보니 왜 우리가 이것들을 지켜야하는 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 반,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겠어요" 라며 기특한 생각을 내놓는다. 2분단 뒷켠에서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짝의 밀고에 흥분했던, 수업시간에 고성을 지르다 자주 지적받는 00이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영어게임을 하다 흥분해서 소리낸 게 아이들에게 이렇게나 불편할 줄 몰랐어요. 앞으론 조심할게요."
00이의 수줍은 반성의 말에 반아이들은 "괜찮아, 앞으로 안그러면 돼" 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화답해준다. 그 정다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학급신문을 다 완성하고 발표까지 마친 아이들의 얼굴에선 마치 갓 샤워를 하고 나온 듯 광채가 돈다. 그 얼굴들을 보며 나도 마음 속으로 조용히 다짐한다. 거창한 무언가를 쓸게 아니라 내가 마주하는 일상 속 이야기를 써봐야지. 아이들처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내의견을 내고 해결방안을 부단히 성찰하며 써나가야지.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숨겨져있던 세상에 대한 촉수를 세울때가 왔다.
잊고 있던 시민기자의 본분을 상기하게 만든 아이들의 열정에 감사하며 컴퓨터 모니터앞에 앉아본다. 그리고 저 학급신문 덕에 당분간 잔소리를 안해도 된다는 점. 오늘의 큰 수확이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계정에도 실립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0) | 2023.11.26 |
---|---|
과자로 만든 ‘불임의 집’ 서울 (1) | 2023.11.26 |
예술은 죽지 않는다, 우리 추억 속에서 숨쉬니까 (2) | 2023.11.25 |
JTBC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시즌3’ - 이름을 찾고 싶은 이들을 위해 (2) | 2023.11.25 |
익숙함은 옳은가 (2) | 202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