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는 서럽다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경남 창원 엔씨파크에서 열린 엔씨다이노스와 기아타이거즈 경기였다.
“쌔리라 박건우 쌔리라 쌔려 박건우!”
“오오오 엔씨다이노스 오영수 쌔리라 안타!”
관중들의 응원 중 ‘쌔리라 쌔려’가 귀에 꽂혔다. 때리라 때려 뜻이다.
원래는 ‘날려라’이다.
경기가 7회 말로 접어들 때였나.
기아타이거즈 투수가 연거푸 1루로 견제구를 던지자 관중석에서 “쫌! 쫌!” 짧은 구호가 터졌다. 사전에는 쫌을 조금의 경상도 말이라 하지만 이렇게만 안다면 밍밍하다. 이때 쫌은 야유 대신 ‘그만해라 그만’이다.
대체로 지역 토박이말인 사투리는 앞뒤 상황에 맞춰 억양과 느낌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된다. 엔씨다이노스 타자가 계속 파울볼을 치자 또 관중석에서 “쫌! 쫌!”을 외친다. 이때 쫌은 앞과는 사뭇 달라 모음을 길게 뺀다.
‘제발’의 간절함을 담은 외침이다.
마침 최근 시작한 내 작업이 근현대 100년 발행물에서 경상도 사투리 문장 수집이다.
우리나라 지배층은 오랫동안 중국 글말을 가져와 사용하면서 ‘권력패거리’를 이루었고 민중들이 쓰던 토박이말을 얕잡아봤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와 권력은 고학력층에 비례하고 그들은 국제화, 문화 다양성을 내세우며 영어 프랑스어 등 온갖 다국적 언어 사용을 과시한다.
그 사이 우리말은 뒷전이었다.
사투리는 더 일찍부터 멸시와 수난을 겪었다.
유신정권 당시 학교에서는 국어순화운동과 표준말쓰기가 지침이었고 아이들에게 자라면서 익힌 사투리를 버리고 표준어로 ‘고쳐’써라 통제했다.
이 같은 일은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중세유럽 지배층의 언어는 라틴어였다.
하지만 단테의 ‘신곡’은 그의 고향 토박이말인 피렌체어로 쓰였다.
그는 이전에도 ‘토박이말 드높이기’라는 글을 써서 귀족들에게 돌린 적 있었다.
‘신곡’ 이후 이탈리아 지배층은 서서히 라틴어가 아닌 토박이말로 문학과 예술을 논했고 ‘민중이 낄 수 있는’ 문화 토대가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몽테뉴도 토박이말 사용에 애썼다. 저서 ‘에쎄’를 쓰면서 그는 라틴어를 버리고 민중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토박이말을 쓰려고 했다.
지금 경남 진주는 그야말로 빛의 도시다.
남강에 띄워진 수많은 유등 중 쏠쏠한 이야깃거리는 ‘한글 유등’이다.
한글날 즈음 시작되는 축제에 맞춰, 진주성과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 위로 환하게 밝힌 5개 유등 ‘나·랏·말·싸·미’가 반갑고 미덥다. 여기에 더해 자음 ‘ㄱ·ㄴ·ㄷ·ㄹ … ㅎ’까지 14개의 유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온갖 유등으로 테트리스 놀이하듯 남강을 채우던 예년과는 다르다. 작은 변화지만 눈 밝은 시민들이 금세 알아챈다.
“와 자음 뿌이고?”
“돈이 안 됐나. 모음이 뽄이 안 나나.”
“다음에 보겠제.”
그렇다면 다음해,
그 다음해는 지역 토박이말 에나, 하모, 단디 등이 남강을 밝힐 수 있겠다 싶다.
지역이 열쇳말이 된 지 제법 됐다.
지방정부는 곳곳의 이야기를 캐내 지역 상품을 만들려고 하지만 성과와 수익에 기울어 더러 선무당 사람 잡는 모양새다. 문화 원형은 우리의 말글살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야기를 캐려면 먼저 말에서 물꼬를 틀어야 하지 않을까. 탯줄을 달고 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익힌 말,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말… 허투루 여기는 사투리에는 드러나지 않은 삶과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오래전 한겨레에서 ‘말뜻말맛’을 연재한 고 김수업 선생은 저서 ‘우리말은 서럽다’에서 “말을 생각의 집이라 했으나 말은 생각만의 집일 수 없다.
말은 느낌의 집이며, 뜻의 집이고, 얼의 집이기도 하다. (…)
말은 사람의 집이요 삶의 집이다”라고 밝혔다.
지금, 우리의 말글살이는 어떠한지. 우리말을 잃고 어정잡이 삶을 사는 건 아닌지.
577돌 한글날을 앞두고 나는 진주시립서부도서관 서가 한 귀퉁이에서 ‘우리말은 서럽다’를 찾아 빛바랜 책장을 뒤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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