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입력 : 2024.02.07 19:56 수정 : 2024.02.07. 19:58 장동석 출판평론가
중국 서진(西晉) 시대, 좌사(左思)라는 문장가가 있었다. 그가 10여년 각고의 노력 끝에 써낸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 도읍의 풍물에 관한 책 <삼도부(三都賦)>는 당대 지식인들의 총애를 받는 작품이었다. 그 책을 베껴 읽는 이들이 늘어나자 당시 도읍이었던 낙양의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낙양지귀(洛陽紙貴), 즉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라는 말은 그렇게 탄생했다. 시시때때로 베스트셀러가 탄생할 때면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말이었는데, 근자에는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도 없는데,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지난 몇년 사이 종이값은 50%가량 올랐다고 한다.
종이의 핵심 재료인 펄프의 국제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
두 번째는 유동적인 원유 가격 탓에 대폭 상승한 해상 운임비 때문이라고 한다.
몇몇 언론 보도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경기침체 등으로 종이 수요가 정체”된 것도 영향을 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어쩔 수 없이, 출판사들이다.
종이값은 물론이거니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안 오른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값을 무작정 올릴 수도 없다. 종이책 이탈 현상이 가뜩이나 깊어지는 와중에 책값까지 올리면, 애써 남아 있던 독자들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는 35년 동안 지하실에서 폐지 압축 일을 한 노동자 한탸가 등장한다. 지하실 천장의 뚜껑문이 열리면 이내 온갖 책들이 쏟아진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괴테의 <파우스트>도 그곳에선 한낱 폐지에 불과했다. 비록 복제화(複製畵)일망정, 한편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렘브란트의 ‘야간순찰’ 등도 보인다. 한탸는 신속하게,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작품들을, 어떤 이들에게는 규제와 탄압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금서(禁書)들을 폐지로 만든다.
와중에 눈 밝은 독자였던 한탸는 귀한 책들을 모아 자신의 아파트를 책의 성채(城砦)로 만들었다.
모르긴 해도 좌사가 <삼도부>를 지은 이유는 짧은 시간 존재했던 위·촉·오의 사례에서 배워 훗날 ‘서진’이라 불린 통일 왕조가 좀 더 길게, 하여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으면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바람에 부응하지 못하고 서진은 채 60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원은 다시 동진, 오호십육국 시대 등 혼란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베스트셀러 <삼도부>가 낙양의 지가는 올렸는지 몰라도, 오롯한 정신만큼은 남기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일말의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하여 폐기할 수밖에 없는 종이더미들 속에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는 삶의 진리를 발견하며 철학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삶을 일구어냈다.
종이값이 오르고 또 올라도, 종이책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책이 팔리지 않아 폐지로 압축되어 버려질지라도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발명품으로서 책의 본질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은 진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다시금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폐지로 버려지는 책들이 더 이상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함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한탸가 남긴 독백 속에 어쩌면 책의 온전함에 대한 답이 있지는 않을까.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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