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당분간 모든 싸움에서 진다 해도

닭털주 2025. 1. 1. 16:09

당분간 모든 싸움에서 진다 해도

입력 : 2024.12.31 19:53 수정 : 2024.12.31. 19:56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수년 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부할 때, 관련 기록을 보며 처음 든 의문은 이웃이 왜 몰랐을까였다. 첩첩산중도 외딴섬도 아닌 도심 부랑인시설에서 감금·폭행과 강제노역으로 수백 명이 죽어갈 동안 어떻게 그랬을까. 그러다 한 인터뷰에서 그곳을 걸뱅이들 살던 데라 복기하는 주민을 보며 짐작했다.

어쩌면 다수는 몰랐다기보단 모르고 싶었던 것 아닐지.

추운 날 내 호주머니 속 동전에 호소하여 마음 산란하게 했던 걸뱅이들을 먹이고 재워준다니 다행이라 자위하며 말이.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1980년대 중반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기득권을 지닌 수녀원이 갱생의 명목 아래 타락한소녀들의 노동력을 착취함을 이웃이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닫힌 문 저편에서 모종의 불의가 일어나고 있음은 감지했을 테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지만, 누구도 더 캐묻진 않는다. 가여운 애들이 굶진 않으니 감사한 일이라 안위하는 게 속 편했을 거니까. 석탄배송업체를 조그맣게 꾸려 가족을 부양하는 펄롱 역시 한때 그랬을 수 있다. 수녀원에 땔감을 배달하러 갔다가 제발 여기서 데리고 나가달라 애원하는 소녀를 마주하기 전까진.

그날 밤 그는 아내에게 묻는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던 적 없냐고.

아내는 답한다.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할 일도 있다고.

가진 것 지키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은 걔들이 겪는 일을 겪지 않을 거라고. 우리에게 무슨 책임이 있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노동자의 머리 위로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지던 시대였고, 옆 섬 북동부에선 탄광 폐쇄에 맞서 파업 중인 광부들이 가족의 유품을 부숴 땔감으로 삼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배고픈 어린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의 우유를 훔쳐먹는 빈곤의 책임은 저희끼리 위스키잔 기울이며 학교 우유 급식을 중단한 위정자들에게 있지, 새벽부터 그을음 묻히며 노동한 삯으로 일꾼들의 명절을 챙겨준 펄롱에게 있지 않다.

그럼에도 성탄 전야에 그는 수녀원으로 되돌아가, 캄캄한 석탄광에 가둬진 어린 미혼모를 밖으로 이끈다.

수군대는 이웃을 아랑곳 않고 절룩이는 소녀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온다.

 

펄롱은 아버지 없이 세상에 왔다.

윌슨 부인은 미혼모였던 어머니를 내치지 않았고, 출산과 양육을 조력했으며, 고아가 된 펄롱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다.

일꾼 네드는 어린 펄롱을 이발소에 데려가고 함께 놀아주었다. 유년기에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소중한 존재라 느낀 순간도 더러 있었으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림 퍼즐 대신 낡은 책과 고무 물통을 받고 외양간에 숨어 울던 순간 또한 있었다.

하지만 불의를 목격하고 기로에 선 그는 자기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내 자식만큼은마음 다잡는 대신 지금의 나를 빚어낸 별것 아닌 선의들을 기억해내어 행동한다.

이는 달콤한 동정심이 아니다.

가진 걸 잃는 게 한순간임을 알면서도 이만하면 괜찮지 싶던 자기 세계를 깨부수고 타자를 들이는 결단이다.

그 파열을 철학자 데리다는 환대라 부른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소녀는 교구 사제 등의 주선으로 타 시설에 맡겨졌거나 원 가족에게로 보내졌을 것이다.

펄롱은 석탄 주거래처를 잃었을 것이고, 수녀원 재단 학교에 다니는 그의 딸들은 불이익을 당했을지 모른다.

한동안 동네 술집에선 아기 아버지가 펄롱 아니냐 수군댔겠지.

세상은 곧장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지속적 연대와 투쟁에서 온다.

하지만 거기에 더운 숨을 불어넣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그리고 나를 깨부수어 밖으로 내어놓은, 사소한 것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펄롱이 처음 보인 옅은 웃음처럼.

당분간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조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