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64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작은 것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 삶 (하) / 서총명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작은 것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 삶 (하) / 서총명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사람이 치사해지는 게 한순간이었다. 쿠팡, 신문배달 아저씨들과 엘리베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다니 참 유치한 일이지만 그렇게 됐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는 날에는 독점하기 위해 배달이 15층이면 15층, 16층을 함께 눌렀다. 서총명 | 맨홀 점검 노동자 한 가지 일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는 시대이다. 부업을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서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우유배달을 선택했다. 일주일에 3일만 배달하면 되고, 시간도 내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새벽 1시쯤 대리점에서 그날의 우유를 수령하는데, 배달..

책이야기 2022.03.24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작은 것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 삶 (상) / 서총명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작은 것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 삶 (상) / 서총명 2020년 8월 도로 위에서 맨홀 점검을 할 때, 다른 안전장치 없이 라바콘만 세워둔 채 작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서총명 제공 2019년에는 우유배달을 했고, 2020년부터 맨홀 점검 일을 했다. 우유배달은 7개월간 서울 목동지역에서 했다. 이후 2020년 6개월간 하수도 맨홀 점검에 이어 2021년 역시 같은 시간만큼 상수도 맨홀 점검 작업을 했다. 이 글은 상하수도 맨홀 점검과 우유배달에 관한 비정규 노동 일지다. 상수도와 하수도는 도시위생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공급은 상수도로, 배출은 하수도로 이뤄지는데 이 상하수도의 청결이 도시와 시민들의 위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길을 가다 보면 같..

책이야기 2022.03.24

‘1호’의 설레는 장면

‘1호’의 설레는 장면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시작, 출발, 처음. 늘 설레는 장면이다. 그 앞에 서 있는 이들의 활기는 그야말로 생생하다. 더군다나 수천만의 유권자가 참여하여 출발할 이를 정하고, 언론과 시민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하는 상황이라면, 방향과 무관하게 정말 잘해보고 싶은, 잘해내야겠다는 다짐으로 충만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말과 행동과 선택이 한 시기의 1호로 기억되고 기록된다는 점에서는 책임과 부담이 적지 않겠지만, 두 마음을 비교한다면 역시 신나는 쪽이 확연하게 앞서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각별히 주의하며 발을 내디뎌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와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뜻을 세우고 펴낼 이야기를 택한다는 점에서 출판사가 첫 책을 펴내는 마음을 떠올려..

책이야기 2022.03.24

과학과 정치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가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9) 영화 ‘돈룩업’으로 본, ‘순수한’ 과학이라는 허상

과학과 정치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가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9) 영화 ‘돈룩업’으로 본, ‘순수한’ 과학이라는 허상 영화 ‘돈 룩 업’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많은 의제들은 정치적이다. 핵발전, 기후 위기, 유전자 조작, 심지어 코로나19 대응마저도 우리는 이것이 과학의 일인지, 정치의 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음을 느낀다. 그리고 여러 경우에 과학이 외치는 선지자의 외침을 정치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생각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영화가 2021년 말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돈 룩 업’이다. 세계를 멸망시킬 혜성이 다가옴을 발견한 천문학자가 위기를 경고하고 대응을 촉구하지만, 물질과 권력에 눈먼 정권이 이를 무시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

책이야기 2022.03.23

식탁이여, 안녕... 나이 오십에 내 책상이 생겼다

식탁이여, 안녕... 나이 오십에 내 책상이 생겼다 학생 시절에는 당연했던 내 공간을 다시 찾고 달라진 일상 22.03.12 15:31l최종 업데이트 22.03.12 15:31l전윤정(monchou31) 나이 오십을 앞두고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주부였지만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늘 아쉬웠다. '내 방'이 따로 없으니 주로 식탁에서 글을 썼다. 밥을 먹을 때마다 노트북을 치우고 책을 한 옆으로 밀어 놔야 했다. 책을 보기에는 식탁 조명이 어두워서 책상용 스탠드를 가져다 두며 나름의 공간을 꾸며 보았지만, 글 쓰는 살림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식사 때마다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늘어났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세 자매도 식탁에서 같은 명작..

책이야기 2022.03.16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박미향 | 문화부장 그가 울음을 참았다. 어머니를 뵌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묻자 꾹 눌렀던 슬픔을 터트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에 사는 부모님을 2년간 뵙지 못했다고 했다. 덩치가 산만한 후배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흐느꼈다.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됐다. 동시에 9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아버지는 병원에서 그렁그렁 가래가 차오를 때면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을 반으로 잘랐다. 쓰고 남은 반은 천천히 접어 머리맡에 고이 두셨다. 그러지 마시라고 몇번을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뭐든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한다.” 아버지의 청승이 싫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타박도 했다. 못났던 내가 ..

책이야기 2022.03.16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걷기와 공부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걷기와 공부 '자유, 너는 자유다' 출간한 도보여행가 이응석 작가 21.10.12 14:01l최종 업데이트 21.10.12 14:01l원동업(iskarma) 그는 도보여행가다. 섬, 산, 강, 우리나라 해안가 둘레길을 두루 걸었다. 걷기는 그에게 사유와 책으로도 이어진다. 이 노인을 볼 때마다 선뜻선뜻 놀란다. 이런 노인만 있다면, '노인문제란 게 왜 있겠나?' 하고 생각도 하게 된다. 참, '노인'이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다. 왜 '어르신'이라고 안 하고 노인이라고 해? 그만큼 '나이든 사람 - 노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노인들은 약하고, 거동이 불편해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나. 치매라도 걸리면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책이야기 2022.03.14

‘방만한 예산 집행’ 만화진흥원 왜 이러나

‘방만한 예산 집행’ 만화진흥원 왜 이러나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ㆍ기초지자체 출연기관 불구 감시·견제 없이 연간 200억원 사용 경기도 부천시는 한국의 대표 ‘만화도시’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만화상을 시상하는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열리고, 만화로만 한정하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한국만화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사업을 주관하며 부천에 만화도시라는 브랜드를 입힌 기관이 바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만진원)이다. 올해로 설립 24년차를 맞는 만진원은 지난해 집행한 연간 예산이 202억2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과 함께 드러난 부작용과 한계를 알리듯 기관 안팎 여기저기서 잡음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

책이야기 2022.03.14

[2021 국민독서실태조사가 말해주는 것] 책 읽는 사회가 되려면

[2021 국민독서실태조사가 말해주는 것] 책 읽는 사회가 되려면 이정수(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초빙교수) 2022. 3. 올 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인데, 지난 1년간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각각 8.2%p, 3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대외활동을 줄이고, 재택근무나 재택학습을 하였기 때문에 독서 활동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조사 결과는 의외였다. 2020년 코로나19로 공공도서관이 휴관했을 때 무인대출반납시스템인 스마트도서관을 비롯하여 사서들이 워킹 스루, 택배 및 예약 대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출 서비스를 하였고, 비교적 안정적으..

책이야기 2022.03.12

시와 커피와 고요

시와 커피와 고요 고영직 문학평론가 어느 장소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을 ‘케렌시아’라고 부른다. 원래는 에스파냐어로 ‘투우 경기장에서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라는 뜻이었으나, 자신만의 피난처 또는 안식처를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 나를 위한 장소라고나 할까. 누구나 나를 위한 장소가 있다. 그곳이 동네 술집과 카페 같은 곳일 수 있고, 작은 서점·도서관일 수 있으며, 산·바다·강 같은 특정한 자연 공간일 수 있다. 나를 위한 케렌시아는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한다. 그런 장소에서는 나 자신이 편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나 역시 동네 단골 술집을 비롯해 유독 마음 편한 장소들이 여럿 있다. 이곳에 가면 나 자신이 주인장이라도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처..

책이야기 202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