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64

민중의 벗, 신경림

민중의 벗, 신경림입력 : 2024.05.23. 18:19 이명희 논설위원  시집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등을 쓴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 연합뉴스  시인 신경림은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서울 길음동 집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단골 선술집에 들르는 날이 많았다. 시인은 그 술집 주인의 딸을 위해 두 편의 시를 지었는데, 사연이 있다. 당시 연인이 지명수배를 당해 희망이 없다는 술집 딸의 얘기를 듣고, “결혼하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결혼식 주례까지 선 그는 주례사는 1분 만에 끝내고, ‘너희 사랑’이란 축시를 읽었다. 그 흥에 나중에 덤으로 쓴 시가 ‘가난한 사랑 노래’이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구는 언제 읽어도 콧등을 찡하게 한다. 신 시..

책이야기 2024.07.13

죽음을 업은 삶

죽음을 업은 삶입력 : 2024.07.03 20:51 수정 : 2024.07.03. 20:54 성현아 문학평론가  지난달에 발간된 시집 천국어 사전>(타이피스트, 2024)의 추천사를 썼다. 저자인 조성래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채로, 시집 파일을 넘겨받았다. 어느 봄날,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종이에 인쇄된 그의 시편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의 고향이기도 한 ‘창원’이 제목인 시가 눈에 띄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시에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병원의 구체적인 이름도 등장하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병원이었다. 엄마가 종종 내게 들려주었던 환한 이야기의 배경, 거기서 화자의 어..

책이야기 2024.07.05

북토크의 견물생심

북토크의 견물생심입력 : 2024.07.01 20:42 수정 : 2024.07.01. 20:45 심완선 SF평론가  북토크와 출판기념회는 어감이 다르다. 전자가 아기자기한 만남의 자리라면 후자는 정치인이나 나이 지긋한 사람의 부대행사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둘 사이의 간격이 훨씬 가까웠던 모양이다. 본래 북토크는 출간을 축하할 겸 작가를 예우하는 행사였다고 들었다. 지금의 북토크는 출판사의 마케팅과 독자의 팬심이 조응하는 자리다. 작가는 ‘신간이 나왔습니다. 우리 애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맡는다. 아이돌이 신곡을 발매하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과 유사하다. 양쪽 다 얼굴을 내밀고 존재를 알리고 호감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피력하고자 한다. 북토크에는 ..

책이야기 2024.07.02

첫 시집과 끝 시집을 두 손에 들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첫 시집과 끝 시집을 두 손에 들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수정 2024-06-30 19:08 등록 2024-06-30 15:28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자신을 먼저 들여다봤던 시인의 언어를 빌어 나를 가누고 가늠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의 나’를 꿈꿀 수 있도록 한다. 최근 오병량 시인의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와 황동규 시인의 ‘봄비를 맞다’를 읽으며 가누고 가늠하는 일로 행복했다. 밑줄 쫙쫙 그어가며 그 행간을 오래 서성이며. 오병량 시인이 등단 11년 만에 첫 시집을 들고 나타났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군복무를 마치고 문창과에 ..

책이야기 2024.07.01

당신 이야기 담은 책, 이렇게나 다양한 출판 경로가 있다

당신 이야기 담은 책, 이렇게나 다양한 출판 경로가 있다웹소설 외에도 다분야 자가출판 가능… 그렇게 출간한 책 1년간 순수익 셈해보니24.06.17 18:07l최종 업데이트 24.06.18 09:52l 김예지(luckyyeji)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나는 틈틈이 집필한 초단편(약 2만 자~4만 자 이내) 로맨스판타지 웹소설을 탈고했다. 짧지만 애정을 담아 집필한 원고를, 웹소설 투고 사이트인 '투고하다'(링크)에서 리뷰가 좋은 출판사에 투고했다. 초단편은 길이가 짧아서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일주일 이내로 당락이 결정된다. 과연 투고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해당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희 출판사와는 출간 방향이 맞지 않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활동을 응원하며,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나..

책이야기 2024.06.24

출산율과 독서율의 ‘기묘한’ 평행이론

출산율과 독서율의 ‘기묘한’ 평행이론입력 : 2024.06.23 20:08 수정 : 2024.06.23. 20:09 고미숙 고전평론가  최근 한 유튜브 채널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주제가 ‘출산율 저하와 인문학의 위기’였는데, 처음엔 좀 뜨악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건 알겠는데 그게 인문학의 위기랑 어떻게 연결되지? 한데, 토론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을 묻는 질문에 서방국가 대부분은 ‘가족’을 꼽은 데 반해, 한국은 첫째가 ‘물질적 풍요’였다. ‘인생에서 친구나 공동체적 유대가 지니는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겨우 3%만 응답했고, 세계 최하였다. 직업의 가치를 묻는 항목 역시 마찬가지. 이 자료들을..

책이야기 2024.06.24

계속 쓰는 삶을 위한 스킬

계속 쓰는 삶을 위한 스킬온 몸으로 글쓰기24.06.22 14:31l최종 업데이트 24.06.22 14:31l 강주은(danmoo777)  '원컨대, 내 생각이 명확한 표현을 찾게 해주소서.' 단테신곡 천국편 24곡에 있는 문장이다. 책상 위,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도 간절히 바랐었다. 프렉탈 구조처럼 얽히고 설킨 생각을 또렷하고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가지런히 표현할 길은 없을까? 하고 말이다. 마음속 말을 다 쓸 수 없어 답답한 고구마를 먹던 날들에 고해본다. 나는 이제부터 마음의 빗장을 열 텐데 부디 질서 있게 나와다오! 어떤 재료로도 맛있게 우아하게 요리를 내올 테니 기다려 주겠니? 적어도 목 메는 고구마보다야 더 요리다운 요리를 약속하지. 요리에 대한 값은 시간과 열정과 성실로 대신하고 마침내..

책이야기 2024.06.23

여름을 받아들이기

여름을 받아들이기입력 : 2024.06.19 20:39 수정 : 2024.06.19. 20:40 인아영 문학평론가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진짜 여름이 시작된 것일까. 주변에 여름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은 가운데 나는 예전부터 어쩐지 그러지를 못했다. 여름은 상쾌하고 시원하고 생기 있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무덥고 끈적이고 지치는 계절이니까. 아니, 그보다 모든 것이 빨리 상하고 쉽게 썩고 금방 사라지는 계절이니까. 겨울에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잠들어 시간이 고요하고 느리게 흐른다면 여름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많은 것이 태어나고 자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이 시들고 죽는다고. 금세 지는 꽃잎이나 맥없이 죽는 벌레를 볼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요란하게 태어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계절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책이야기 2024.06.20

이상문학상

이상문학상입력 : 2024.06.13. 18:11 이명희 논설위원  1977년 제정된 이상문학상 역대 수상작 표지. 문학사상 제공  “이 상 역시 제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소설 쓰는 일에 바치는 수고에 지쳤을 때, 그 일이 허망하고 허망해서 망막해졌을 때 꺼내 볼 겁니다. 그때 그것은 한가닥 빛으로든, 모진 채찍으로든,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겁니다.” 고 박완서 작가가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전한 연설문의 끝부분이다. 박 작가는 첫해부터 내리 4년간 우수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고 연설문에서 그는 작가에게 문학상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하게 전했다. 이상문학상은 작가 이상(1910~1937)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문학사상’이 1977년 제정..

책이야기 2024.06.16

책을 읽다가 [서울 말고]

책을 읽다가 [서울 말고]수정 2024-06-02 19:18등록 2024-06-02 19:13  게티이미지뱅크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집을 비울 때면 까치발을 들고 부모님의 책장을 구경했다. 한자가 많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 사진이 많아 읽기 좋은 잡지, 손때 묻은 소설책을 뒤적이다 보면 가끔 부모님이 선물 받은 것 같은 낡은 책들도 만났다. 그런 책의 첫 장엔 꼭 어른스러운 글씨로 새겨진 짧은 문장이 있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천구백팔십몇년 모월 모일. 그런 글씨를 볼 때면 내가 모르는 시절의 부모님에게 누군가 건넸을 어떤 단정한 마음에 대해 상상했다. 쑥스럽지만 손글씨가 새겨진 책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선물 같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그 무렵 누구에게, ..

책이야기 2024.06.09